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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가 밉다고요? 읽고나면 생각 달라져요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1-09-08 20:40 게재일 2011-09-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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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괭이 공주` 문학동네 펴냄, 황인숙 지음, 1만2천원

소설가 황인숙
데뷔 때부터 고양이의 영혼과 공명하며, 고양이를 동반자로 삼아온 고양이 시인 황인숙(52)이 길고양이를 다룬 장편소설 `도둑괭이 공주`(문학동네 펴냄)를 출간했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등의 알려진 시집이나 `해방촌 고양이` 같은 산문집에서 고양이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소설의 형태로 단단하게 가다듬어진 이번 작품은 본격적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마음 안에 돌아다니던 조각 스케치 형태의 고양이들이 정교한 붓 터치를 입어 알록달록한 채색화로 완성된 것이다.

“허무해 내 나이,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주인공 화열이는 스무 살이지만, 앳된 느낌이 나지 않는 조숙한 아가씨다. 고양이들의 엄마라는 책임감도 한몫했을지 모르나 사실은 버려지고 또 버려진 경험 때문이다. 사업 실패 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아버지,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결혼한 후 마음의 빈 곳을 채우지 못해 떠나버린 소녀 같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 번도 제대로 아이일 수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화열이가 혼자 살고 있는 재개발 직전 낡은 시장 건물의 2층 방은, 비가 오면 망가지는 길고양이들의 스티로폼 집을 연상시키고 만다. 이기적인 주인들에게 버려진 후, 상처를 입어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길고양이들과 화열이는 닮아 있다.

그런데 화열이도 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화열이의 곁을 파고든 사람들이 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인터넷 카페 `고양이웃네`의 회원들이다.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며 유학을 준비중인 혜조 언니, 반지하방에서 두 아이를 키워내면서도 활기를 잃지 않은 바리이모님, 인터넷 쇼핑몰을 하는 양야옹 언니, 친절한 회계사 그럭저럭 오빠, 소설가를 꿈꾸는 튕클 언니, 바람둥이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은 전설 아저씨…. 거기에다 화열이 이모 식구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 사람들, 베베치킨 배달원이자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친구 필용이가 더해져 어느새 왁자지껄해져버렸다. 화열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사람들로,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하다.

가방 안에 사료와 때때로 간식 캔, 고양이 혀가 베이지 않도록 음식을 옮겨 담을 햇반 그릇을 들고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를 찾는 화열이처럼 작가도 실제로 고양이 밥을 주고 있다. 벌써 5년째이며, 2년 전부터는 하루에 두 번씩이다. 소설에도 나오듯이, 골목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고양이들에게도 고양이 밥 주는 사람에게도 사람들은 쉽게 적대적이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시인이 사람들의 적의에 매일 받았을 상처, 그럼에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을 헤아리게 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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