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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와 상상 경계를 가없이 넘나들며 샌프란시스코서 봄 여름 보낸 체류기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1-09-15 20:44 게재일 2011-09-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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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위의 세계` 문학과 지성사 펴냄, 정영문 지음, 294쪽, 1만1천원

1996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실제와 상상의 경계를 가없이 넘나들며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정영문(46)이 신작 장편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작가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봄여름 두 계절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며 쓴 일종의 체류기다.

`어떤 작위의 세계`는 과거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의 기억과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지만 5년이라는 시간의 단절이 그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작가 자신인 동시에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인`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과거 여자 친구 그리고 그녀의 현재 남자 친구와 잠시 함께했던 때를 떠올린다.

당시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었는데, 매일같이 함께 데킬라를 마셨고, 황량한 벌판에 있는 그녀의 별장에서 용설란을 쏘거나 집 안에 들어온 전갈들 내보내기도 하고, 언덕에 올라 들판을 내려다보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냈다.

그러던 중 `나`는 불쑥 떠난 짧은 여행에서 안개가 좋다는 이유로 그들과 헤어져 샌프란시스코에 며칠 더 머물며 워싱턴 광장 공원에서 호보를 만나기도 하고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상상 등을 하며 짧은 시간을 보낸다.

5년 후 다시 샌프란시스코를 찾은`나`는 워싱턴 광장 공원에서 예전에 만났던 호보와는 다른 호보를 만나 다시 예전에 했던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상상을 만든다.

같은 공원에서 체리에게 무겁고도 깊은 원한을 품고 있는 것 같은 늙은 아시아계 남자가 조용히 체리만 바라보며 그것을 먹는 것을 의아해하기도 하고, 무수히 많은 “완전히 맛이 간 자들”이 왜 샌프란시스코의 관광 안내 책자에 등장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한다.

과일들을 금문교 밑으로 떨어뜨리려다가도 도무지 의욕이 없어 상상만 하고, 늙은 개와 함께 사는 역시 늙은 히피의 일상을 그와 한 번도 대화해보지 않았음에도 태연하게 글로 펼쳐 보이는 등 소설 도처에서 우리는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하기 어려운 작가의 생각 혹은 상상의 산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작위의 세계`에는 뚜렷한 플롯이 없다.

작가는 책 앞머리에서 “이 소설은 표류기에 가까운 체류기인 동시에, `나`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들리는 대로 듣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지 않고 경험한 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관념과 실재가, 사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정영문식 상상의 박물지이기도 한 것이다. 내면과 세계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문제도 아니고 모험이 함께할 여정의 출발점 또한 아니다. 모든 것은 `나`의 상상의 원천이자 `어떤 작위의 세계` 그 자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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