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설렘, 쓸 수 없는 것을 쓰고자 하는 패기와 비전, 이 모두를 한데 아우르고자 하는 저자의 글은, 화려하거나 논쟁적이진 않다. 하지만 우리 시를 통해 문학 본연의 지향점을 모색하고 아울러 동시대에 던지는 발언의 지점을 확보하고자 하는 야심찬 행보이자 텍스트와 시인, 독자 모두에게 나긋하게 다가오는 따스한 고백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1부는 여러 문예지에 실은 특집 및 기획글을, 제2부는 개별 시인의 시세계를 조망하는 글을, 제3부는 시집에 수록된 해설을 묶어 꾸렸다.
제1부의 첫 장을 여는`자체제작 소리를 내는 상자들, 그리고`는 2000년대 새롭게 등장한 시의 경향을 정리하는 동시에 그간 발견된 가능성들을 바탕으로 진전될 2010년대의 시를 기약하는, 이 평론집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담은 글이다.
특히 김기택 유홍준 황규관 등의 시들이 종래의 노동시, 민중시의 개념을 어떻게 해체-재구성하는가, 그리고 현시기 자본주의에서 양상을 달리하는 노동의 제 현상들을 어떻게 형상화하는가를 추적한 `얼굴 없는 노동, 자본주의의 역습`, `노동과 삶의 노역`은 시라는 장르를 넘어서까지 읽힐 만한 분석적 텍스트이다.
제2부는 좀더 구체적으로 개별 시인의 시세계를 조망하는 글들을 모았다.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중견시인으로 자리매김한 송재학 장석남에서부터 자신만의 독보적인 위상을 확립한 백무산 홍신선, 그리고 박연준 김지녀 이덕규 등의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시인들의 작품세계를 심도있게 다룬 글들이다.
조정인 천수호 문동만 윤성택 이사라 이규리 등의 신작시집을 해설한 3부의 글들은 이에 대한 작지만 뚜렷한 증거인바, 그녀가 앞으로도 시(문학)의 역할과 방향성을 모색하는 `거대한` 기획뿐 아니라 묵묵히 시를 써가는 시인들과 한데 어울리는 현장비평가로서 활약하길 기대하게 한다.
김수이는 서두에서 “평론을 쓰면서 늘 쓸 수 있는 가능성과 쓸 수 없는 불가능성이라는 두 갈래의 길 앞에서 희망과 절망을 반복했다”고 말한다.
두 갈래 길의 존재와 그 사이에서의 갈등은 비단 저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는 가능성과 불가능성, 희망과 절망, 도전과 좌절, 성취와 표류 등 속에서 계속되는 부침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 불확실한 시대에 현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문학 또한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닐까. 불확정성이 강요하는 고뇌와 암담함을 외면하거나 그에 짓눌리지 않고 평론가로서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 사이에서 늘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가는 김수이의 존재는 그래서 그 자신의 겸손한 고백처럼 “때로 허황되”거나 “무기력”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