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집 `소문의 벽`은 이청준 문학 세계에 두텁게 드리운 상징성으로 말해지는 저 유명한 `전짓불의 공포`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알린 중편 `소문의 벽`을 비롯해 총 9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
이 작품집에서 작가 이청준의 고향 혹은 유년의 근원적 이미지를 둘러싼 소설 쓰기의 가능성을 엿봄과 동시에, 이청준 초기 문학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각 작품들을 통해, 이청준 문학의 필생의 질문들이 날카롭고도 집요한 방식으로 드러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청준 문학의 넓이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깊이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 이청준 문학이 다양성과 다원성을 확보하는 이유는 그것의 양적인 집적 때문이 아니다. 이청준은 자기 시대와 자기 세대의 가장 뜨거운 질문법을 만들어낸 작가이고, 그 질문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그 질문의 내부와 배후를 탐문한 작가이다.
`소문의 벽`은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둘러싼 지향성과 그 반성적 성찰을 동시에 보여주는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소설은 `박준`이라는 작가에 대한 `나`의 관찰자적 시점으로 진행된다. `나`는 잡지사 일을 하고 있다. `나`와 박준은 모두 `언어`에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 즉 `자기진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 모종의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박준`에 대한 나의 관심도 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소설은 시종일관 `광인`처럼 행동하는 박준을 그렇게 만든 상황에 관한 질문법을 던지고 있다. 그 탐색의 과정에서 박준이 쓴 세 편의 이야기 즉, `죽은 사람 시늉을 하는 남자 이야기` `사장의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그에 따른 신경과민 증세와 주의력 결핍으로 회사에서 퇴출당하는 자의 이야기` `말할 수 없는 것을 둘러싼 시대의 요구`로 요약되는 세 편의 소설이 액자소설의 구성을 띠며 주요하게 언급된다.
`가학성 훈련`은 자가용 운전수로 일하는 `현수`는 셋집의 주인집 계집아이가 자신의 딸의 머리끄덩이를 꺼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상한 놀이를 묵인한다. `굴레`를 둘러싼 가학성과 피학성의 내적 윤리를 질문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의 또 다른 작품`퇴원` 이후 초기작에서 보여주던 자아회복, 자기 얼굴, 자기 정체성 찾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쟁과 악기`는 이전 작품 `마기의 죽음`처럼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용인되지 않던 시대에 대한 작가의식의 투영으로 알레고리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후 발표될 장편`조율사`의 핵심 단초가 되는 이 작품은 슬픈 노래에 대한 배타적 선호와 즐거운 노래에 대한 금기시 현상처럼 너무도 뻔한 이분법적 선악관과 그에 따른 사물 인식의 획일적 단면성을 꼬집는 한편, 글다운 글을 써내지 못하고 있다는 작가의 자조감이 짙게 밴 소설이기도 하다.
`그림자`는 1966년 5월 `산업경제신문`에 발표된 `복사와 똥개`를 다시 쓴 작품이다. 원제 `복사와 똥개`가 말해주듯, 힘과 권력을 지닌 복서종 개와 그 그늘에서 억압받는 존재로 그려지는 똥개를 통해 삶의 대면 관계, 즉 삶과 죽음, 앞뒤 얼굴, 삶의 연장에 같은 무게로 얹히는 피곤과 외로움, 도시와 시골(고향)이 대비되고 있다.
`미친 사과나무`는 `전쟁과 악기`처럼 이청준의 우화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진짜 배와 가짜 배, 진짜 사과와 가짜 사과처럼, 진짜와 가짜는 이 작품에서 실명과 가명, 생화와 조화, 맨얼굴과 가면, 나와 분신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는 것, 이름과 실체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름이 무엇이든 실체가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야기는 연결된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은 일종의 진술의 방법으로 배신을 택하고, 그 `권력이란는 것의 속성과 그것의 파국`에 관한 글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