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보통사람들이 이제는 달라졌다. 글을 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저리도 많나 싶을 정도다. 문을 열어 깊숙한 곳에 묻어뒀던 마음을 훨훨 날아가게 해주자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국민 모두가 가수라고 하듯, 우리 시민 모두가 타고난 문인이어서 그럴까?
개인 전자출판 도와주는 사이트 인기3년간 책 20권이나 출판한 일반인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능동적 글 생산자로 나섰다. 평범한 생활인이면서 너무도 뛰어난 글을 써 전국에 수많은 팬을 거느리게 된 사람이 한 둘 아니다. 자신의 삶을 정리해 놓고 가겠노라 자서전을 내는 팔순 할머니들도 있다. 언제 이 세상과 영결할지 모르는 암투병자들도 자신의 고단한 삶을 이웃들과 나누겠다고 생활교양지에 투고 한다.
올해 창간 20년 되는 한 생활교양지가 그런 글을 만날 수 있는 지면의 좋은 예다. 이 잡지는 직업 글쟁이가 쓰는 글을 묶어만드는 게 아니다. 그냥 보통사람들이 각자 자기 삶의 알갱이를 꺼내 보인다. 매달 실리는 30여편의 생활수기 같은 글들이 그것이다. 그건 픽션이 아니고 넌픽션이다. 그래서 그만큼 진실되게 느껴지고 실감나고 감동스럽다.
“기차에서 읽고 또 읽으며 한바탕 울 뻔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쁜 생각 속에 살았는지 깨달았거든요. 가끔은 힘들고 아프겠지만 늘 읽으며 힘낼게요” “학생부실 단골이던 아이에게 반성문 쓰라는 대신 이 잡지를 건넸습니다. 슬며시 읽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이렇게 말합디다. `이제 맘 잡고 열심히 생활할게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한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며 남자친구가 골라 준 책인데, 그 이상의 것을 얻었습니다. 이 잡지를 읽으며 울고 웃었던 행복한 시간, 지금 일본에서도 계속되고 있답니다”…
보통사람들의 글쓰기가 주는 감동을 잘 증언하는, 그 잡지 독자들이 써 보낸 답글들이다. 지금까지 실린 7천여 편의 그런 글은 많은 민초들의 마음병을 치료해 주기도 했으리라 싶다.
글쓰기란 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많은 보통사람으로 하여금 쓰고 싶게 하고 다른 보통사람으로 하여금 그 글을 읽고 싶게 하는 것일까?
소설가 김탁환씨가 나름의 설명을 붙여둔 게 있다. “글 쓰는 영혼은 젊은 영혼이다. 텔레비전 끄고 게임기도 밀어두고 책마저 덮은 뒤 하루에 30분이라도 홀로 빈방에서 자신의 내면 풍광을 들여다보며 단어를, 문장을, 문단을 길어 올리는 일은 분명 삶의 우여곡절을 스스로 감내할 힘과 용기를 준다.”
이렇게 보통사람의 글쓰기가 확산되면서 어떤 카페에는 매일 하는 글쓰기 연습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 개인의 전자출판을 도와주는 도메인도 몇 년 전부터 인기다.
그런 바람 속에 어떤 이는 3년간 책을 무려 20권이나 펴 내기도 했다. 십여 년 간 메모해 모은 성과라 했다.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유명한 현대 중국 대표 소설가 모옌(56)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모옌은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으나 늘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대작가가 됐다. 글 쓰는 보통사람들 마냥 그 또한 질박한 문체로 현실과 환상 사이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즐겨 다룬다. 고향의 척박한 땅에서 벌어진 중국 현대사에 천부적인 상상력을 가미해 소설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틀림없이 보통사람의 글쓰기는 그냥 글쓰기가 아닐 성싶다. 그건 소통을 바라는 절규일 수 있다. 전에는 표현하지 못했던 소통을 향한 욕구의 드러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보통사람들은 그런 넌픽션을 더 좋아한다. 넉픽션에는 남의 것이면서 나의 것이기도 한 이야기가 스멀거리기 때문일 수 있다.
이렇게 소비자가 있는 한 보통사람의 글쓰기는 앞으로 더욱 광범해질 지 모른다. 이게 2000년대의 또 하나 트렌드일 수도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