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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스런 입맞춤` 문학동네 펴냄, 정한아 지음, 148쪽, 1만원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1-09-29 20:24 게재일 2011-09-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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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한아
여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에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호랑이가 떡으로만 살 수 있는가, 먹어서 배부른 것이 사랑인가”(`회의적인 육식동물의 연애`) 하고 대답하는 시인이 있다. 그녀에게 `사랑`은 `지옥`이며 “믿음은 열어도 나갈 수 없는 바깥”(`이웃 사랑의 위생 관`) 이다. 허나 이 `지옥`에는 “모든 가련한 것들”을 애도하는 “때로 한 찰나가 영원을 잡아먹는 그런 사랑” (`어떤 기도`) 을 하는 그녀가 있다. 2006년`현대시`로 등단한 시인 정한아(37)다. 그녀가 데뷔 6년 만에 첫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문학동네 펴냄)을 들고 왔다. 첫 시집의 뜨거움이라 하면, 날것, 죽기 전에 아가미를 펄떡이는 물고기의 그것일 텐데, 정한아의 첫은 좀 남다른 데가 있다. 덜 익었다거나 여물었다는 비유보다 어쩌면 오래 익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녀의 첫을 열매 맺기를 거부하는 시들이라 일컫음은 어떨까. 중요한 것은 시간을 거스르는 거부가 아닌, 이미 그것을 넘어섰다는 데 있다.

`거대한 감옥`이거나 `타인의 침대`인 이 세계에서 정한아가 살아가는 방법은 “하필, 사랑”이다. 죄짓지 않고 사는 이 없지만 그 죄 다음이 하필 사랑이라니. 타인에게 침대는 휴식의 공간이고 시간이다. 허나 그것은 곧 나의 불편한 세계로 귀결된다. 시인은 “춥고 캄캄하고 척척한 곳”에서 “못생긴 심장의 나지막한 허밍”을 들으며 “마주치자마자 내 골수에 자기의 촉수를 담그는 얼굴들과” “차일수록 자욱해지는 지랄 같은 외로움을 몰고”(`이상한 가투(街鬪)`) 가며 살아간다. 삶은 `영원히 붙박인 폭우 속 캠프의 밤`(`눈을 가리운 노래`)이며 `진흙투성이`의 `끝나지 않는 축제`(`눈을 가리운 노래`) 다.

“이곳에 바닥도 천장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있어야 한다고 믿지도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공상태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고, 아틀란티스인처럼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언제나 그래왔다고, 우주인이 화성에 가도 출구 따위는 없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완전히 체념했을 때, 썩은 동아줄, 잭의 시퍼런 콩나무, 팔다리 없는 무지개 너머 에도 바깥은 없고 발바닥은 아등바등 두 팔은 지푸라기처럼 꺾인 너의 목을 끌어안고 어푸 어푸 (사랑해 사랑해) ((살려줘 살려줘))

-`타인의 침대`에서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나

한 사람을 낳고 모두 사라지는

말할 수 없이 폭력적인 생리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나

한 사람을 죽이고 손을 씻는

말할 수 없이 공공연한 심리

이 거리의 이정표는 이제

아는 것들만 알려준다 이미

와 있는 것들의 끔찍한 소용돌이

-`죽은 예언자의 거리`

이 부정의 세계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정한아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앵무새`는 그 질문을 들고 온다. 그녀에게 `앵무새`는 고독의 증거 그 자체다. `앵무새`는 자신의 언어가 없다. 그것이 그의 정체성이다. 정한아에게 타자, 타인은 `앵무새로 하여금 대신 말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내게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도 `앵무새`와 떠나버렸고 세계는 앵무새의 정체성과 다름없다. 고독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앵무새`의 목소리로 다시 한번 들려오고 그것은 한 존재의 고독으로 다시 그녀 자신에게 돌아온다. 고독은 그녀로 하여금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휘발되는 언어는 앵무새로 하여금 하나의 세계로 다시 들려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앵무새는 시인의 `거울` 이자 `자화상`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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