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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곡 명태가 주는 애국심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0-17 23:00 게재일 2011-10-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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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호성악가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중략) 소주를 마실 때 캬~ (중략)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중략)”

이 곡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변 훈 선생의 국민가곡 명태다. 1951년에 작곡돼 1952년 늦은 가을 부산에서 오현명 선생님의 노래로 처음 발표돼 대한민국 한국 가곡 사에 큰 획을 그었고 국민의 전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 이후에 모든 저음 성악가들에게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 가곡 명태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필자는 변 훈 선생님 10주기 추모음악회를 부산에서 한 적이 있다. 한국 최고 성악가들이 이 음악회를 자원해 개최했다. 대곡인 명태가곡을 필자는 부르게 되었고 코믹스럽고 해학적인 음악 표현 보다는 드라마틱한 표현으로 명태를 노래했다. 음악회가 마친 후 변 훈 선생님의 장남께서 눈물과 감동으로 나에게 건넨 말을 잊을 수 없다. “어떻게 당신은 저희 아버님의 곡의 의도를 아셨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단순한 칭찬으로 받아드렸는데 장남의 흥분된 어조가 우리의 대화를 계속 하게 했다. 이 곡은 변 훈 선생님이 작곡한 후에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오현명 선생님을 찾아가 연주를 했지만 두 분의 해석은 극적으로 달랐다. 작곡가 변 훈 선생의 명태는 낙동강 변에서 본 젊은이들의 허망한 죽음과 꿈이 없는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이 곡을 지었고, 오현명 선생님은 그 뜻을 바탕으로 해학적. 코믹적인 요소를 강조해 쉽게 대중에게 불렀다. 이래서 “소주를 마실 때~캬~”란 부분이 우리에게 친숙해 국민의 사랑을 받았든 것이다. 필자는 두 어른의 다른 음악적 세계를 비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 불려 오고 있으면서 이 곡이 코믹한 곡의 이미지만 전해져 온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이 `명태`의 노래는 산수 갑산 우리나라의 정서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6·25전쟁 때 학도병들의 현실을 기록한 서사적인 민족의 노래이다. `쫙쫙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라는 가사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격정적으로 부르는 클라이맥스의 성악곡에 한 학도병의 이름이 빛도 없이 죽어간 대한민국 청년의 애환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젊은 청년의 구국정신이 이 노래에 담겨있는 것이다.

음악에는 많은 악파가 있다. 그 중에 국민악파를 소개하고 싶다.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에 걸쳐 러시아, 북유럽 등지에서 국민적·민족적 특색을 살리기 위해 그들 고유의 리듬과 가락을 넣어 곡을 만든 유파이다.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의 멜로디는 독자들이 젊을 때 에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응원가로 많이 불렀고, 오페라 베르디 작품인 나붓꼬의 노예들의 합창은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서 민족의식의 고취에 많이 사용됐다. 이런 아름다운 멜로디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음악이상으로 그 나라의 역사성을 우리 머릿속에 기억하게 해 준다. 이렇듯 국민악파는 드보르작, 스메타나, 시벨리우스, 그리그, 베르디와 같은 천재 작곡가와 함께 발전해 왔다. 우리 대한민국도 홍난파, 조두남, 최영섭, 변훈같은 천재 작곡가들이 일제 치하 때와 한국발전사의 중심에서 수많은 창작 작품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 부드러운 감성적 음악으로 죽음을 불사하는 애국심을 심어준 것이다.

전공한 성악인 들도 명태를 코믹한 곡으로만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장 일남 선생님의 가곡인 “비목” 이상으로 학도병의 영혼을 위로한 노래가 명태임을 알아야 한다.

예술가의 책임 중에 그 시대적 상황을 민감하게 반응해, 정신적으로 깨어서 작품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한국가곡 명태는 코믹성과 해학적 표현으로 국민으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 대작 속에 우리의 한이 담겨있는 대한민국의 역사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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