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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에 남긴 신라인의 천문지식

영남이공대 교수
등록일 2011-10-27 21:00 게재일 2011-10-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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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변삼각형과 태극모양이 새겨진 장대석, 금당터 돌마루와 서탑,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 내함
사적 제31호로 지정된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감은사지(感恩寺趾)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틈만 나면 쳐들어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동해 바닷가에 터를 잡은 곳이다. 문무왕이 절을 짓다가 죽자 아들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했다. 사중기에 의하면 금당 기단 아래에 동향한 구멍을 두어 이곳으로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들어와 서리도록 했고, 유서에 따라 뼈를 매장한 곳이 절의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절의 이름은 본래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진국사(鎭國寺)였으나 신문왕이 부왕의 호국충정에 감사해 감은사로 고쳤다고 한다.

1960년과 1979~80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1430년 전에 지은 감은사는 2탑식 가람배치로 탑 뒷편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금당터가 확인되었다. 또한 금당의 바닥은 H자형의 받침석 위에 긴 귀틀석을 놓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돌마루를 깔아 놓았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법당 돌마루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왕의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신문왕 2년에 축조된 감은사 3층 석탑은 금당터 앞에 나란히 쌍탑(국보 제112호)으로 서 있다. 탑은 상하 2단의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3층 석탑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60년 서탑 해체 수리 시 3층 탑신에서 청동제의 원뿔 모양 뚜껑이 달린 직사각형 외함과 그 안에 정사각형의 기단과 사리병을 모셔 둔 몸체 그리고 수정으로 만들어진 보주의 3부분으로 이루어진 내함이 있고, 내함 안에는 수정사리병 등으로 구성된 사리장엄이 발견되었다. 높이 3.8㎝에 금실과 금알갱이로 만든 뚜껑이 덮여 있는 사리병 안에는 진신사리로 추정되는 사리 1과가 안치돼 있었다. 그리고 금당터에서 발견된 막대 형태의 긴 장대석에는 양각과 음각으로 이등변삼각형과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동편은 해에 관한 것이고, 서편은 달에 관한 것으로 이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만월주기인 29.5일과 지구 공전주기인 365일에 매우 근사한 값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다. 이등변삼각형의 꼭지각은 35.8°로 놀랍게도 이 수치는 경주의 위도와 일치하고, 태극에는 황도(黃道)의 경사 각도인 23.5°가 내재돼 있음도 밝혀졌다. 이것은 당시 신라인들의 뛰어난 천문학적인 슬기와 지혜가 담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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