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방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정 많고 진솔한 마음씨 착한 한국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아예 한국에서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32세의 까만 얼굴의 버징고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부룬디국립대학교에 다니던 2003년 8월 대구 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육상선수로 한국에 왔다. 필자는 아직 부룬디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나라다. 경기가 끝나자 부룬디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 정부에 난민을 신청했다. 그 당시 그의 조국은 투치족과 후투족 사이에 오랜 내전으로 황폐화 됐고 1993년에 부모가 살해됐다고 한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막노동을 하면서 2005년에 난민으로 인정받아 회사원이 됐다고 한다. 버징고의 성실함을 눈여겨보던 회사 경영자의 주선으로 중국에 자동차부품을 수출하는`해외영업맨`이 됐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귀화시험 과목인 국사와 국어를 공부했다. 국내 마라톤에 출전해 3연패 했고 대학에 편입해 학업도 계속한 상태다. 버징고는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나라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할 것을 선서합니다”그는 한국인이 된 것이다. 난민인정자로서 귀화인으로 주민등록증도 발부받게 됐다고 한다. 법원에서 창원 김씨의 시조로 한국식 이름 `김창원`이 됐다.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고마움을 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우리보다 더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했을 때 그리고 국적인증서를 가슴에 품은 그의 눈망울엔 뜨거운 눈물이 송송 맺혔다고 한다. 이처럼 한 청년의 꿈이 실현될 수 있는 나라 - 우리의 대한민국은 정말 인정많고 예의바른 민족으로 비춰졌다. 모두가 일어서서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며 감명스럽게 부른 `애국가`, 우리는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면서 영원한 우리 국민임을 자랑하고 싶다.
/손경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