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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 세상에 눈뜨다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1-04 23:59 게재일 2011-11-0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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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시인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소재로 한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시란 은유(메타포)”라고 말하는 네루다에게 우편배달부 마리오가 묻는다. “선생님은 온 세상이 즉 바람, 바다, 나무, 산, 불, 동물, 집, 사막, 비…. 기타 등등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루다는 한참 생각한 끝에 “내일 내 생각을 얘기해 주지”라며 여운을 남긴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었던 마리오는 위대한 시인 네루다를 만나면서 세상과 시(詩)에 눈뜨게 된다. 마리오의 의식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린 것은 바로 은유(메타포)였다. 은유를 알아가면서 마리오는 다시 태어나게 되고 자아와 세상을 보다 넓고 깊게 깨닫게 된다. 네루다가 “이 섬의 아름다움을 한마디로 말해보라”고 했을 때 마리오는 망설임 없이 “베아트리체 루소!”라고 대답한다. 영화 `일 포스티노`전편에 걸쳐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은유의 한 장면이다. 베아트리체는 마리오가 “계속 아프고 싶었던”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이렇듯 은유는 삶의 차원을 바꿔놓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방향까지 바꾸는 마법이다.

지금 그 마법에 걸린 아내가 내 곁에 있다. 아내의 뱃속에 은유가 잉태한 것이다. 지난주 검진 때 의사가 말했다. 이제 곧 맞을 준비를 하라고. 올 초 초음파 사진에 찍힌 한 점 은유를 만났다. 저렇게 작은 점 하나에 깃든 생명이라니! 아내의 배는 점점 불러왔고 은유는 자꾸 세상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우주 어딘가에서 이곳 지구까지 아내의 배를 타고 고단한 항해를 해 온 은유를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설레고 떨린다. 마리오가 은유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다시 발견했듯이 우리 부부는 은유를 통해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딸의 이름을 `은유`로 정한 것은 내가 시인이라서가 아니다. 앞서 마리오가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은유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라고 네루다에게 물었지만 사실 그것은 물음이 아니라 믿음이다. 아름답고 벅찬 인간의 믿음이다. 이 우주가, 이 세상이 거대하고도 정교한 은유로 이뤄졌다고 나는 믿는다. `A는 B다`라는 은유의 위대함은 동일성의 발견에 있다. 이질적인 것의 동일화(화해)가 이뤄질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이 바로 은유이다.

소월의 시 중에 `부모`란 시가 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부모 마음은 부모가 돼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불효자라서 그런지 딸 `은유`를 맞을 준비를 하면서 부모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리게 된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던` 은혜와 이제 곧 세상에 나올 `핏덩어리`의 은유를 통해 다시금 세상에 눈뜰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파블로 네루다는 “시란 은유다”라고 마리오에게 말했지만 어쩌면 “인생의 모든 것이 은유”가 아닐까 자문해보는 가을밤이다. 옆에 앉은 아내의 배가 굴룩굴룩한다. 나도 저렇게 굴룩굴룩 은유의 시를 썼었다. 초겨울의 산야에서 병실을, 사거리 한 귀퉁이에 쳐놓은 천막(농성장)에서 이글루를,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호에서 30대 중반의 나 자신을.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교사는 아내가 있어야 하며, 랍비는 결혼한 사람이어야 한다” 교회나 성당에서는 이를 주로 성(性)의 관점에서 보지만 속내는 `자녀`일 것이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의 잉태와 출산, 양육을 통해 비로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여기 한 이름없는 시인이 `위대한 은유`를 맞으려 한다. 이 가을 당신이 만날 `은유`는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만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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