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피터 마르틴이 쓴 세계화의 덫을 통해 굳혀진 20대 80 사회가 1대 99의 사회로 발전하는 데는 14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로 양극화가 심해진 결과다. 지난 9월 17일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 뉴욕 월가에서 발발한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그것이다. 시위는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동조 세력을 얻으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밖에 되지 않는 부자들의 탐욕과 성공에 비해 절대다수인 99%는 절망과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계화의 그늘이 폭로된 것이다.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가진 자들의 모럴 헤저드와 도를 넘어선 욕심 앞에 고물가와 고실업률, 현실에 대한 절망감에 99%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올 수능 응시자는 전국적으로 64만 명. 대구가 3만6천, 경북 2만6천여 명이다. 전국의 200개 4년제 대학 입학 정원이 32만9천 명, 전문대 입학정원은 22만 명이다. 수험생 중 80% 이상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수도권 4년제 대학 정원은 11만5천 명, 4개 국공립대 정원은 8천 명이다. 소위 일류 대학에 들어가려면 그 문은 훨씬 좁아진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일자리를 얻는 것은 또 얼마나 좁은 문인가.
그래서 일부 대학의 특정 학과는 경쟁률이 50대 1을 넘기 예사고 특정 대학은 1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1%에 진입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다. 거기서 탈락하면 99%에 편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대학입시는 전쟁이 됐다.
대강당을 꽉 메운 대학입시 설명회장을 보면 안다. 어저께 막 수능시험을 치른 입시생도 있지만 퍼머 머리의 여성 학부모들이 훨씬 많다. 그들의 눈빛만 봐도 자녀의 대학 입학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냥 대학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보다는 졸업하면 취업도 잘 되고 그래서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그런 대학을 찾는 것이다. 자신이 얻은 성적을 손해 보지 않고 실력을 110% 인정받는 그런 운이 따르기를 말이다.
이런 판에 대학을 스스로 자퇴한 젊은이들을 보면 참으로 용감하다는 생각이다. 연세대 신방과 4년 장혜영 씨가 “대학을 반드시 졸업할 필요가 없다”는 선언문을 내걸고 자퇴서를 냈다. 지난해 고려대 김예슬씨가 대학을 거부한다며 자퇴했고 최근엔 서울대 유윤종씨도 학력차별 금지를 내세우며 자퇴했다. 이들 명문대생들의 자퇴는 1%가 되기 위해 생의 상당 부분 희생을 당연시하는 같은 세대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될 듯하다.
그러면 과연 누가 99%를 1%와 차별 않고 평등하게, 잘 살게 만들 수 있나? 결국 1%가 99%를 위해서 더 노력하고 가진 것을 베풀고 지혜를 발휘하고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 전체에 신뢰가 쌓이고 상생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 1%에 편입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입시생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학문을 두드리는 수험생들이 1%에 편입되려는 노력에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