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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한 언어로 일군 따뜻하고 아름다운 서정 세계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1-12-07 21:48 게재일 2011-12-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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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정시의 맥을 잇는 시인으로서 시단의 큰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는 박성우(40) 시인의 세번째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창비 펴냄)이 출간됐다.

첫시집`거미`와 두번째 시집`가뜬한 잠`을 통해 서정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시인은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직접 몸 부대끼며 겪은 체험 속에서 가식 없는 정갈한 언어를 일구어 따뜻하고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를 그린다. 행간에서 출렁거리는 곰삭은 시어와 감각적이고 정밀한 묘사가 곳곳에서 은은한 빛을 반짝이며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

나는 자주자주

자두나무 정류장에 간다

비가 와도 가고

눈이 와도 가고

달이 와도 가고

별이 와도 간다

덜커덩덜커덩 왔는데

두근두근 바짝 왔는데

암도 없으면 서운하니까

비가 오면 비마중

눈이 오면 눈마중

달이 오면 달마중

별이 오면 별마중 간다

"

공동체적 삶의 회복을 지향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농경문화적 전통이 살아 숨쉬는 “외딴 강마을”(`자두나무 정류장`)을 주요 시적 공간으로 삼는다. “발 동동거릴 일 없이 느긋”(`나흘 폭설)한 그곳에서는 `나`와 `너`의 경계도 없고, 손익을 따지는 약삭빠른 계산도 무의미하다. 한 사람이 먼저 베풀면 자연히 그에 대한 보답이 이어지는 순박한 마음이 있을 뿐이다.

시인이 그려내는 이곳의 삶의 풍경은 무척이나 정감있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병원에 모셔다드린 보답으로 “지팡이 앞세우고 물어물어,” “족히 일년이 넘게” 집을 수소문하여 “참깨 한 봉지”(`참깨 차비`)를 들고 찾아오신 할머니, “닭서리”를 하다 들키자 닭 주인집 “논두렁과 밭두렁 우거진 풀”과 “동네 진입로며 마을 안길 가녘의 수북한 풀”까지 “시원시원” 베어내는 것으로 닭값을 대신하는 “한동네 환갑어른”(`닭값`). 이런 이웃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시인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아, “윗집 할매”가 “내 텃밭에 요소비료를 넘치게 뿌려” “상추며 배추 잎이 누렇게 타들어”가도 원망은커녕 “비울 때가 더 많은 내 집을 일없이 봐주”시는 할머니에게 “콩기름 한 통 사다가 저녁 마루에 두고”(`별말 없이`) 오는 선한 마음을 베풀며 살아간다.

“외딴 강마을/자두나무 정류장에//비가 와서 내린다/눈이 와서 내린다/달이 와서 내린다/별이 와서 내린다//나는 자주자주/자두나무 정류장에 간다//비가 와도 가고/눈이 와도 가고/달이 와도 가고/별이 와도 간다//덜커덩덜커덩 왔는데/두근두근 바짝 왔는데/암도 없으면 서운하니까//비가 오면 비마중/눈이 오면 눈마중/달이 오면 달마중/별이 오면 별마중 간다”(`자두나무 정류장`부분)

남달리 따뜻한 시인의 시선은 이웃뿐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성찰하며 생명의 근원을 파고든다. 강변을 걷다 발견한 고라니뼈에서 “물 한 모금과 목숨이 아무렇게나 뒤엉킨 시간”(`고라니뼈`)을 보며 자연과 생명의 섭리를 일깨우는 시인은, “씨앗 묻은 일도 모종한 일도 없는”데 “소나무에 호박넝쿨이 올”라온 “뜬금없는” 일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생명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깨닫는다.

시인은 또 인간의 생명을 이어주는 상징으로서`배꼽`을 통해 생명의 본성을 재발견한다. “우리가 밥 배불리 먹고/배를 문지르는 버릇이 생긴 것”이나, “고플 때도 입이 아닌/배를(아니, 정확히 배꼽을) 만져보는 것”이 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입이었던 배꼽”(`배꼽 2`)을 기억하려는 무의식적인 몸짓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지금은 “입에게 입의 일을 맡기고/입을 꼭 다문 입”에 불과한 배꼽을 만지면서 “엄마와 조곤조곤 애기하던 입”의 기억을 되살린다.

박성우의 시는 낯설고 인공적인 언어로 가득한 최근 시들의 한 경향에서 한 발 비켜서서 “일상의 진실과 생명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하상일`해설`)에서 현재의 우리 시단에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첨단의 감각에 기울기보다는 순박하고 투명하며, 때로는 “서른일곱 먹도록” “서울엔 종점 같은 건 없는 줄 알았”(`종점`)다는 어리숙한 모습으로 중심에서 외떨어진 삶의 쓸쓸함과 아름다움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그의 시는, 언뜻 보기에 낡고 오래된 듯하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더욱 생생한 서정시의 환한 미래를 보여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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