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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고 계획해야 할 때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2-29 23:22 게재일 2011-12-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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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일본에 가 며칠 묵으면서 사람을 만나고 신문이며 텔레비전을 보니, 바깥이라 그런지 우리 한국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우선 한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 많았다. 타카오카 소스케라는 일본 배우가 트위터에 한류를 비난하는 말을 올렸다가 논란이 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텔레비전에 한국 배우들, 가수들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면서, 자신은 일본의 전통적인 프로를 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 한국 관련 방송이 나오면 텔레비전을 꺼버린다 라고 했던 것이다.

내게 일본에 부는 한류 바람에 대해 비판적인 논평을 전해 준 사람은, 텔레비전에서는 온통 한류 바람인 것 같아도 인터넷 같은 데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의 반응을 보면 싸늘하다 못해 굉장한 반감까지 서려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타카오카의 발언 같은 것에 수만명의 젊은이들이 댓글을 달고 동조하는 현상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지금 일본에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주부들 아니면 노인들인데, 이 사람들은 방송 자본이 들이미는 한류를 즐기며 무방비 상태로 앉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런 상업 자본의 전략에 강한 반발심들을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몸매 좋은 아이돌 가수들이 `엉덩이를 흔들면서` 텔레비전 채널을 장악하는 현상에 대한 저항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금 신한류가 일본은 물론 서양까지 잠식하고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새로운 상품을 찾고 있는 거대 방송자본들이 한국의 `준비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수용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문화의 `해외 진출`이 지속적인 힘을 갖기 위해서는 산업 수준보다 더 근본적인 문화 창조를 준비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 그것은 역시 북한에 관한 것이었다. 일본은 지금 3월에 발생한 쓰나미의 충격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했다. 하네다 공항에서 십 분 안에 대피할 수 있는 연습을 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언제, 어디서 밀려올지 모르는 쓰나미에 대한 공포가 그들 사이에 만연, 잠재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쓰나미가 밀려온 날이 공교롭게도 3월 11일, 미국에 9·11이 있었다면 일본에서는 3·11이 있었던 셈이다. 9·11이 미국의 문화, 정치적 지형을 바꾸어 놓았듯이 3·11 또한 일본을 격심하게 변화시킬 것임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런 중에도 일본은 새로운 수상 노다 요시히코가 중국을 방문해서 한반도 문제를 논의에 올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본 정부에서는 북한에서 밀려올지 모르는 난민들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있었다. 각종 언론 매체들은 북한 현 체제 및 새로 부상한 김정은에 관한 분석 기사를 쓰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접하여 새삼 뒤돌아보며 생각하니,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 중국, 미국이 모두 한반도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주도권을 쥐기 위해 애쓰는 가운데 한국 정부만이 이상하게도 각종 협상의 뒷전에 밀려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조문을 해야 하니, 말아야 하니 하는 문제는 필자가 염려할 일도 신경 쓸 일도 못 된다. 서울대학교에서 학생 일부가 분향소를 설치한 것이 지성에 값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만은 있지만 이러한 문제는 역시 정치의 `기술`에 속하는 문제일 것이다.

필자가 지금 정작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이 우리를 둘러싼 중요한 문제들을 그 무게에 어울릴 만큼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지,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지, 지혜를 모으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문화에 대해서도, 정치에 대해서도 우리들의 준비와 계획이 어딘지 뭔가 부족해 보이는 것은 단지 필자의 단견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사안과 시국은 중대한데 우리는 지나치게 팔짱만 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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