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윤일 요한제 9일 기도
12일부터 시작해 20일까지 매일 오후 3시에 바치는 9일 기도는 ▲사랑(황창연 신부) ▲기쁨(손용환 신부) ▲평화(김정식 신부) ▲인내(김연희 수녀) ▲친절(조광 고려대 명예교수) ▲선행(구영수 환경학 박사) ▲진실(이정순 수녀) ▲온유(김인주 달성피부과 원장) ▲절제(성바오로딸 수도회) 등을 지향으로 이뤄진다.
이윤일 성인의 순교 기념일인 21일에는 오후 5시 관덕정 순교기념관 성당에서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28일 오후 2시에는 대구가톨릭대학교 하양캠퍼스 중강당에서 제17회 청소년을 위한 윤일축제를 열어 성인의 순교 정신을 기린다.
우리나라 성인 103위 가운데 마지막에 이름을 올린 이윤일 성인은 충청도 홍주의 열심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충청도를 떠나 경상도 상주 갈골로 이주했으며,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다시 문경의 여우목(호항리)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당시 그곳은 성인의 처갓집 식구들(순교자 박사의 후손)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103위 성인 가운데 많은 이들이 `회장`의 직분을 다했던 것처럼, 이윤일 요한 또한 공소회장으로 활동하며 이곳에서 외교인 30호를 입교시켰다.
1866년 병인박해 때 경상북도 문경 여우목에서 체포돼 1867년 1월21일 대구 관덕정에서 52세의 나이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성인은 체포될 당시에도 도망치지 않고 태연하게 포졸들을 맞이했고,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도 순교할 수 있음에 기뻐하며 오히려 자신의 목을 치는 이에게 수고한다며 돈을 건넨 후, 성호를 긋고 꿇어 앉아 참수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성인의 유해는 우여곡절 끝에 미리내 무명 순교자 묘역에 모셔져 있다가, 성인의 유해임이 밝혀져 1987년 1월21일 대구대교구청 내 성모당으로 안치하고 교구 제2주보 성인으로 선포했다. 이후 1991년 1월20일 관덕정 순교기념관 성당 제대에 봉안했다.
이윤일 성인은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됐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