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희` 문학과지성사 펴냄,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이진아 옮김, 264쪽, 1만원
인도의 타고르에 이어 동양에서 두번째이자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 일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해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널리 알려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장편소설 `무희(舞姬)`(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당대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 실천적인 행보를 하지 않았으며, 문학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입장을 뚜렷하게 표현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던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무용소설`들을 발표하면서 `순수한 미의 세계`를 추구하였다. 야스나리는 이후 20여 년 동안 무용을 소재로 작품을 쓰며 무용과 무용가에 대한 자신의 끝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무용은 보이는 음악이고 움직이는 미술이며, 육체로 쓰는 시(詩)이자 연극의 정화이다`라고 말하는 야스나리에게 무용은 외적인 육체의 미를 강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아름답고 순수한 정신과 더불어 춤추는 것이 이상적인 춤이었다.
`무희`는 1950년을 배경으로 전후의 혼란 속에서 세 무희의 무용과 사랑, 가정이 전쟁으로 인해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리며 가와바타 야스나리 무용소설의 계보를 잇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탐미주의의 거장인 야스나리의 예술적 성취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 여타의 그의 무용소설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이 작품은 가와바타의 무용소설의 정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후 일본의 전통미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를 전환해가는 과정에 있는 작품으로서 가와바타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야스나리는 풍부한 서정과 섬세한 감각뿐만 아니라 패전 후 서서히 붕괴해가는 일본 사회의 모습과 무기력한 현대인의 비극을 보여준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일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 고전의 세계, 영원성, 정신적인 것 등을 지향하는 작가의 의지와 흔적을 드러낸다.
`무희`는 1950년 12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총109회에 걸쳐서 아사히신문의 연재소설로서 발표되고, 같은 해에 출판된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미코는 젊은 시절엔 프리마 돈나를 꿈꿨지만 이루지 못하고, 그 딸인 시나코에게 무용에 대한 애정을 쏟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가정교사였던 야기와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20여 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그녀의 실제 연인은 결혼 전부터 알았던, 이미 다른 가정이 있는 남자 다케하라다. 야기와의 결혼 생활에서의 해방과 다케하라와의 새로운 사랑을 꿈꾸지만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그녀의 성격으로 인해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나미코의 딸인 시나코는 유명 발레단인 오이즈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다. 그녀는 어머니의 재능과 예술적 소양을 물려받은, 장래가 촉망되는 무용수였으며 유럽에 유학을 갈 계획이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그 꿈이 좌절된다. 소녀 시절 자신에게 무용을 가르쳤던 선생님 가야마를 향한 동경과 연정을 품고서, 그와의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나미코의 제자이자 시나코와 자매처럼 지내던 도모코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나미코 곁에서 일을 도우며 무용을 배우던, 진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무희이다. 그녀는 시나코가 입던 낡은 코트를 얻어 꿰매어 입어가면서도 밝게 생활하며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간다. 그러나 가정이 있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그 남자의 아이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무용을 포기하고 유흥가 아사쿠사에 가서 스트리퍼가 된다.
지금 우리의 시선에서 보면 답답하게 보일 수 있는 세 인물들은 시대와 사회에 정면으로 대항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마음으로부터 순응하지도 못하며 우유부단하게 살아왔다.
가정문제뿐만 아니라 일적으로도 나미코는 무대의 꿈을 단념한 과거의 무희이고 시나코는 아직 프리마 돈나가 되지 못한 미래의 무희일 뿐이며, 소설 속에는 그녀들이 타인의 무대를 보는 것만 묘사되고 스스로의 힘을 승화시키는 무대는 그려지지 않는다.
이러한 인물들이 결국은 어느 쪽으로든 자신의 선택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현대인의 비극과 극복의 아름다움은 무희나 여자의 경험을 뛰어넘은 본질적인 것으로 깊은 감동을 남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