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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표, 개인명리를 앞세운 공수표

이경우 기자
등록일 2012-02-13 21:45 게재일 2012-02-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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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편집국장

촉나라 제갈공명은 조조의 위나라를 치기 위해 출진하면서 주군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린다. 힘이 턱없이 미치지 못하지만 자신을 세 번씩이나 찾아와 국사를 논하던 전 임금 유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군사를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하지만 기자의 한문공부가 일천하고 감성 또한 미숙해서인지 별 감흥이 일지 않는다. 단지 대를 이어 충성하는 제갈공명의 나라 걱정하는 마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4월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발걸음이 더욱 바빠졌다. 이미 예비후보 등록 이전부터, 그러니까 지난 해 12월 이전부터, 멀리는 지난 4년 동안 부지런히 출마 예정 지역을 드나들며 표를 관리해 온 후보자도 있다. 임기가 3년 가량 남았는데도 이런 저런 말이 필요 없다며 진작 사표를 내고 총선 출마를 선언한 공직자도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과 지역을 드나들며, 어떤 사람은 아예 주소를 옮겨놓고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많은 예비후보들이 선거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행사장에 뻔질나게 인사나 다니고 사진 박힌 예비후보 명함으로 자기 알리기에 열중한다. 후보 중에는 나중에 정부 투자기관이나 정치권 입김으로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예비후보로 등록해서 “나도 출마했습니다”고 얘기하고 어디 가서 자리나 노리는 그런 후보들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대구 경북 지역의 경우 새누리당 정서가 강해 어떤 지역구에는 새누리당 공천을 희망하는 예비후보가 7, 8명씩 되기도 하고 10명이 넘는 곳도 있다. 그들이 몽땅 출마하는 것도 아니다. 적당히 눈치를 보고 다니다가 다른 정치적 흥정으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물러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 기회를 엿보기도 하고 또는 다른 자리에 옮겨 앉기도 한다.

가당찮은 공약을 내걸기도 한다. 국회의원인지, 자치단체장인지, 또는 동네 대표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비행장을 옮기겠다는 공약에서부터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거나 일자리를 만들고 학교 폭력을 없애겠다는 공약까지 다양하다. “중앙 부서에서 요직을 맡아 지역을 살릴 길을 안다”거나 “지방의회에서 그동안 수련을 했다. 나만큼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이제는 지역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고 싶다”. 대표적인 출마의 변이다.

하긴 18대 국회의원들의 공약 5천여개중 임기동안 완료된 것은 1천700여건으로 35% 뿐이었고 3천건이 아직 추진중이며 334건(7%)은 아예 폐기됐다니 그 공수표를 어찌 감당할 것인지 의문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비록 지역구에서 당선되지만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국정을 운영 통제 감독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다.

특히 지역 민심이 새누리당에 치우쳤던 때문인지 새누리당 일부 예비후보들의 기염은 코미디 수준이다. 너나없이 지역 민심을 들먹이며 목청을 높인다. 그러면서 자신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적격자라고들 한다. 자신이 몸을 던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사다리 발판이 되겠다는 출사표는 보이지 않는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나서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명은 주인 유비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지는 싸움인 줄 알면서 군사를 일으켰다. 자신을 죽여서라도 나라를 구해야 한다며. 그런데 오늘의 출사표 주인공들은 정작 주인인 국민들의 뜻에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명리를 세우고자 싸움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닌가. 국회에만 보내주면 주머니속의 송곳처럼 재주를 펴 보이겠다는 것인데, 믿고 말고는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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