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화해놓고는 안 받아?” 뜬금없는 아내의 성화에 기가 찼다.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아무리 사실대로 얘기해도 변명이 될 뿐, 뭘 감추느냐고 몰아대니 답답할 뿐이다. 지금은 다소 나아졌지만 스마트폰으로 처음 바꾸고 난 뒤의 일이다. 전화를 걸지 않았는데도 그 섬세한 터치폰은 언제 무엇을 눌렀는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누라한테 전화가 걸렸고 난 그런 사실도 모른 체 그냥 호주머니에 폰을 집어넣고 다녔던 것이다.
올해 초 미국에서는 스마트폰 때문에 170년 역사의 뉴욕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중단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링컨센터. 뉴욕필이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9번 마지막 부분을 연주할 때 에이버리피셔홀 맨 앞줄에서 아이폰 벨소리가 울렸던 것이다. 벨소리는 실로폰의 일종인 마림바 소리로 지휘자 앨런 길버트가 벨소리를 꺼 달라고 부탁하고 나서도 한 참 뒤에야 벨소리를 껐다.
벨소리의 주인공은 20년 동안 뉴욕필을 후원해 온 60대 클래식 애호가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그는 공연 전날 휴대전화를 아이폰으로 바꾸었고 매뉴얼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그는 폰을 진동 모드로 바꿨지만 알람은 작동됐고 그는 자신이 벨소리의 장본인인줄 몰랐다고 한다.
그 스마트폰이 우리 선거판을 뒤흔들려 하고 있다. 지난해 10·26 보궐선거에서 맛을 보여 주긴 했다. 그러나 지역 사정은 다르다. 노인들이 점령해버린 농촌 지역의 특성상 아직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만이 유일한 이용법인 많은 노인들에게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효용을 논하기에는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다.
민주통합당에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시작된 국민 경선은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절차에서부터 말썽이다. 선거인단 신청을 서면이나 직접이 아니라 모바일과 인터넷, 또는 콜센터 등 세 가지 방법으로만 받으면서 불거졌다. 전화는 폭주했고 콜센터 연결이 잘 되지 않는 틈을 노려 아르바이트생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조직에서 미리 확보한 노인들의 연락처를 이용해 접근, 인터넷으로 대신 등록시켜 주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비밀과 직접이라는 선거의 기본이 흔들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실 노인들은 모바일 투표의 방법을 습득하는 자체가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아르바이트가 동원돼 병원 환자신상이나 거래 고객 명단이 팔려나가고 대리 등록하는 방법으로 불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은 당내 경선에서뿐 아니라 이번 총선에서 모바일 투표제를 도입하려 부단히 시도했다. 심지어 선거구획정에서 모바일 투표와 연계시키려고도 했다. 새누리당 정치개혁특위 간사인 주성영 의원은 민주당의 경선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모바일 투표를 입법화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모바일 투표는 투표부정이 가능하고 또 접근하지 못하는 농어촌 고령자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될 뿐이다.
그러나 추세는 모바일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시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비록 휴대폰의 효용이 받기 전용에 그치는 사용자가 더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지난 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 SK텔레콤을 비롯한 세계 1천400여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가 열렸다. 여기에는 자동차와 통신의 결합에서부터 금융, 원격진료 등 모바일 기술의 확장에 따른 미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우리가 따라 가든 말든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모바일, 지금 세상은 모바일 혁명으로 가고 있다. 솔직히 모바일 같은 첨단기기의 변화 속도를 따라 가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힘이 든다. 그것이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