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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국회의원 해봤어?

등록일 2012-03-12 21:51 게재일 2012-03-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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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편집국장

지방장관인 도지사와 함께 해외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나름 도지사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비행기 출발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 수속을 밟아 짐을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해서 공항 게이트에서 대기하다 비행기 탑승 트랩을 밟을 때까지 도지사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이코노미석에 앉아 있었던 나로서는 1등석에 탄 도지사를 볼 수도 없었다. 긴 여행 중 도지사가 찾아와서 음료수를 권할 때까지 도지사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와서 입국 수속을 마칠 때까지 도지사는 볼 수 없었다. 이미 트랩에 상대국 접객원들이 나와서 모셨기 때문이었다. 1등석의 도지사와 이코노미석의 나는 비행기 출입문도 달랐다.

국회의원에게 장관급의 예우를 해주는 특권 중에는 공항 귀빈실 이용이 있다. 일반인들과 달리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대신해준다. 별도 게이트를 통과하며 귀빈실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해외 여행을 가 본 사람은 안다. 공항 출국장에서 준비하는 지루함이 얼마나 무료하고 따분한지를. 또 이코노미석에 앉아 장거리 비행을 한 뒤 다시 입국장을 빠져 나오느라 긴 줄을 서서 기다려본 사람이면 안다. 국제공항 출입 절차가 얼마나 귀찮고 까다롭고 성가신지를.

지역 신문기자에게도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고관들을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편이다. 그래서 높은 사람들의 거들먹거림(본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보였다)을 곁에서 보아왔다. 한번은 지역 중소업체 사장이 내가 출입하는 기관의 장을 만나게 해 달라며 내가 아는 사람을 연결해서 부탁해 왔다. 그는 나에게 “만나게만 해 주면 된다. 그 다음은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그랬다. 많은 청탁들이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국회의원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그들의 특권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새누리당이 스스로 불체포특권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안을 논의한 것만으로도 그들의 특권이 얼마나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지를 증명해준다. 후보들도 특권을 철폐하겠다고 들고 나오는 판이다.

권위주의시대 전국구 국회의원의 일화다. 그가 당시로서는 거금인 10억원인가를 공천헌금으로 내고 한번 더 국회의원을 하느냐 마느냐 참모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였다. 젊은 한 지지자가 말했다. “아니 영감님, 10억원 씩이나 내고 국회의원을 하시려 합니까?” 그의 답은 이랬다고 한다. “너희가 국회의원 해봤어?” 당시로서는 정치후원금이 관례화돼 있었을 테고 지금 같으면 검찰청과 교도소를 열 번도 더 들락거렸을 비리도 버젓이 횡행했던 때의 얘기다.

국회의원의 특권.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제외하고라도 임기 4년 동안 세비만도 각종 수당과 활동비까지 합하면 연 1억3천만원이나 된다. 여기에다 개인적으로 채용하는 4급 등 6명의 보좌진을 두는 사장님이기도 하다. 그들은 개인 비서 겸 선거 때면 운동원이 되는데 주로 측근들을 쓰기도 한다. 물론 나라에서 주는 그들의 급여만도 연간 2억7천500만원이다. 그들의 움직임 자체가 국가 기관의 공무이다보니 차량 유지비와 기름값, 우편료, 철도와 비행기, 선박 무료 이용 등 국가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니 특혜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번거롭다. 공식적인 정치후원금만도 평균 1억원을 훌쩍 넘는다. 퇴임 후에는 단 하루만 국회의원을 해도 65세가 넘으면 월 120만원의 연금을 품위 유지 명목으로 받게 된다.

200가지가 넘는 그들의 특권. 그래서 배지를 떼고 나면 금단현상이 온다는 그 권력의 맛을 찾아 부나비가 불에 뛰어들듯 선거판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국회의원 숫자를 또 늘렸다는 것 아닌가? 보통 국민의 손가락질쯤은 자신 있다는 그들의 오만함을 심판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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