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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이게 끝이 아닙니다

등록일 2012-03-19 21:47 게재일 2012-03-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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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편집국장

일부다처제의 세계인 원숭이 무리는 새 수컷이 헤게모니를 잡으면 옛 두목의 새끼들을 죽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미 임신한 암컷들은 대장이 바뀌면 자발적으로 유산해서 `영아살해`를 막고 있다고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이 최근 밝혔다. 에티오피아의 야생 겔라다개코원숭이 21개 집단의 암컷 110마리를 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라 한다. 임신한 원숭이 10마리 중 8마리는 대장이 바뀐 지 2주 이내에 유산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새 수컷이 등장한 바로 그 날 암컷들이 일제히 유산을 했다는 것이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 정당들의 공천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텃밭이라는 대구 경북 지역에서는 공천을 거머쥔 예비후보들이 팔부능선을 넘어선 듯 느긋하다. 그런가하면 낙천한 후보들도 반발 수위를 낮춰가더니 대부분 수긍해가는 분위기다. 아쉽기도 하고 뭔가 잘못 되었다는 듯 후보에 따라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던 기류가 시간이 지날수록 숙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에서는 한 때 미래권력인 친박근혜계의 좌장이었던 김무성 국회의원이 탈당하지 않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발표해 새누리당 내 친이계를 비롯한 낙천자들의 탈당 도미노에 제동을 걸었다. 그가 공천에 불만을 품고 탈당해서 다른 당으로 말을 갈아타거나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단했다면 많은 공천 낙천자들의 행보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과 동지를 떠나면서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정도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4선 의원인 그가 “우파 분열의 핵이 돼서는 안 되므로 백의종군하겠다”고 분명히 선을 그음으로서 새누리당은 그에게 빚을 지게 된 셈이다. 여권 내부에서는 그가 비례대표 의원 상위순번에 배치되거나 총선에서 부산지역 선대본부장을 맡는 등 중요하게 쓰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어떻게 쓰이더라도 그의 말처럼 네 번씩이나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으로서 통 큰 결단을 내리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일 것이다.

김무성 의원의 백의종군은 새누리당내 공천 탈락 의원들의 탈당을 막아냈다. 4선인 대구의 박종근 의원을 비롯, 의성의 정해걸 의원과 3선인 안동의 권오을 전 국회 사무총장도 당의 결정을 받아들여 불출마를 선언했다. 우파를 분열시켜 좌파 정권의 집권을 도와줄 수 없다는, 우파 정권재창출에 기여하겠다는 명분이다. 죽어서 사는 길을 택했다고 보고 싶다.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들은 처음에는 자신을 `표적`으로 삼았다거나 특정인을 위한 `밀실공천` 또는 `기획공천`이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눈비를 맞아가며 당을 지켜온 지금까지의 충성은 간 곳 없다며 분해한다. 현역 의원들의 반발은 그렇더라도 아예 배지 한 번 달아보지 못한 예비후보들의 아쉬움은 더 크다.

“날개도 펴 보지 못하고 여기서 끝내려니 너무 아쉽다. 지역을 위한 청사진을 갖고 내려왔는데, 이렇게 끝나게 돼 안타깝다” 새누리당 포항지역 한 예비후보의 한탄이다. 그는 예비후보 두 달 동안 하루 네 시간씩 자면서 강행군을 했다고 털어놨다. 선거 운동으로 체중이 빠졌다고 했다. 중앙에서 나름대로 고향을 위해 노력했는데 막상 지역민을 대하고 보니 “`그것을 내가 했다`고 내놓기가 쑥스럽더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억울하지만 당의 결정에 승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이 모든 것을 단 돈 xx원에 모십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여기에다가 모든 가정에서 한 세트씩 장만해서 편리하게 사용하시라고 △△를 하나 더 드립니다.” TV 홈쇼핑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 공천, 이게 정말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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