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가 결국은 서울 관악 을 국회의원 후보 등록을 포기했다. 그러면서 야권연대는 탄력을 받게 됐다. 이 대표는 야권 단일화를 위한 경선을 조작했다는 비난에 재경선을 고집했었다. 이 대표가 등록을 포기하기까지 야권의 원로들을 비롯한 많은 지도자들이 숨가쁘게 움직였고 이 대표의 포기를 이끌어냈다. 이 대표의 노선이나 정치 철학을 떠나 야권 연대를 위한 출마 포기는 정치 도의적으로 당연하면서도 자기를 버리는 큰 결단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4.11 총선에서의 야권 연대 협상을 지켜보면서 선거에서의 연대란 결국 상대를 떨어뜨리기 위한 공동 전략이라는 데 도달하게 된다. 이 대표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주위의 훈수를 수용한 데서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대구의 12개 선거구 중 9개 선거구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성사된 것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장한 결정으로 보인다.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대구시민의 심판은 물론 그런 협상과는 별개일 것이지만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이는 논어에서 말하는 `화이부동`이라 할 수 있겠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니 동질성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의리를 배신하지 않고도 진심으로 어울리니 과히 군자의 어울림이라 할 만하다.
선거에서의 단일화와는 다르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협상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연걸이 주연한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의 모티브가 됐던 자객 형가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진나라 장수였던 번어기는 모반에 실패하고 연나라로 도망간다. 처자식은 도륙당하고 자신의 목에는 천금이 포상으로 붙여진다. 연나라 태자 단은 어린 시절 진시황이 왕이 되기 전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었던 친구사이였다. 그런데 진나라 왕이 된 시황제가 자신과 연나라를 업신여기고 짓밟으려 하자 진시황을 없애려 한다. 태자 단의 친구 전광은 단의 목적달성에 맞춤형 칼잡이 형가를 소개해 준다.
검술과 독서로 단련하고 호걸들과 사귐을 좋아하는 협객 형가는 진시황에게 접근하려면 연나라 땅 지도와 번어기의 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태자는 지도를 줄 수는 있어도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번어기의 목은 차마 내어놓으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번어기에게 형가가 시황제를 없앨 궁리를 설명하자 번어기는 선뜻 목을 내놓는다. “이를 갈고 밤잠을 설쳐가며 기대하던 일을 마침내 이루어 낼 임자를 만났다”며, 자기의 원수를 갚아 달라며 칼로 자신의 목을 친 것이다. 전광도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자객을 보냈다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자살한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에서 야권 연대가 속속 단일화로 성사되는 모습과 달리 무소속은 선거구 간 연대만 논의될 뿐 선거구 내 단일화는 시도조차 되지 않는 것을 본다. 야권 연대와 무소속 연대는 그 목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의 김문오 달성군수 후보가 선거의 여왕 박근혜 의원의 지역구에서 그가 지원하는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을 거머쥐었다. 이는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겠다는 무소속 후보들의 공동 목표가 있었고 그를 달성하기 위한 후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지역에서 출마한 무소속 후보들의 선거구 내 단일화 협상이 안 되는 것은 상대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 출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동이불화`라 할 만하다. 절박함, 내가 죽어서 목표를 이루겠다는 절박함이 없으면 연대는 있어도 단일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