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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분노와 슬픔 책의 언덕에서 불어오는 미풍과 함께 사라진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2-03-30 21:09 게재일 2012-03-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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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웅진지식하우스 펴냄<br> 니나 상코비치 지음, 296쪽, 1만3천800원

빌 게이츠는 바쁜 일과 중에도 매일 한 시간씩, 주말에는 두세 시간씩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그는 “컴퓨터가 책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 더 소중하다”고 밝혔다. 루소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었는데 한 권을 다 읽지 않고서는 결코 자리를 뜨지 않았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을 나서면서 1천여권의 책을 싣고 떠났다. 링컨은 아버지의 꾸중을 들을 때에도 책을 주머니에 숨겨 넣고 틈틈이 읽었다.

책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기에, 수많은 위인들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을까. `혼자 책 읽는 시간`(웅진지식하우스)의 저자 니나 상코비치는 하루에 한 권씩, 1년간 365권을 읽었다. 이렇게 책을 읽기 전, 그녀의 삶은 만신창이였다. 3년 전, 언니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그녀는 온갖 일을 하면서 슬픔을 잊으려 했지만 허무함은 커졌다. 그러던 중 400쪽이 넘는 소설 `드라큘라`를 읽고 처음으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평소에 자신을 괴롭히던 감정들이 사라지고 책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새삼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인물들이 생의 시련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독서의 한 해를 `요양원에서 보낸 한 해`로 비유한다. 책의 언덕에서 불어오는 미풍은 우리 안에 있는 건강하지 못한 분노와 슬픔의 공기를 날려준다. 그 과정을 기록한 `혼자 책 읽는 시간`은 책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마력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시작으로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를 대하는 법을 알려준 `셀프의 살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결코 버릴 기억은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 찰스 디킨스의 `귀신 들린 남자와 유령의 흥정`, 사랑하는 언니를 먼저 보냈다는 죄책감을 떨치게 해준 `우연히`, 과거의 사랑은 추억하고 지금의 사랑은 인정하게 해준 `사랑의 역사`, 세상은 예측불가능한 곳이지만 동시에 경이롭다는 사실을 알려준 폴 오스터의 `어둠 속의 남자`, 다른 세대의 경험을 가진 부모님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해준 `저격`, 슬픔을 흡수하는 방식을 일깨워준 `기억을 파는 남자`와 `이민자들`, 그리고 독서의 한 해가 끝날 무렵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톨스토이의 `위조쿠폰`까지, 365권은 인생이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교과서였다.

인생에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일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괴로운 감정을 잊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한다.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고,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가 낫진 않는다.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불쑥 나를 찾아와 무기력하게 만든다. 시련에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몽테뉴는 “어떤 슬픔도 한 시간의 독서로 풀리지 않았던 적은 내 인생에 한 번도 없었다”며 힘든 순간에는 언제나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가 선택한 방법도 책 읽기였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는 책을 통해서 삶을 구원받아왔다. 베스트프렌드가 떠난 빈자리도, 실패한 연애의 아픔도 책으로 구원받았다.

언니의 죽음은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었다. 그래서 3년 동안은 최대한 삶으로부터 도피하려고 애썼다. 잊기 위해서 내가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웠지만, 오히려 아픔만 커질 뿐이었다. 하지만 보랏빛 독서 의자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책만 읽었던 1년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저자는 바쁜 나날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나와 쉬는 것만으로도 뒤집어진 삶의 균형을 복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오후의 뜨개질, 나홀로 산책일 수도 있고, 퇴근 후 요가수련 혹은 저자처럼 홀로 책 읽는 시간일 수도 있다. 주어진 삶이 버겁다면 혼자, 책 읽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떠한가.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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