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현대인의 삶과 애환 멋진 한시로 풀어내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2-04-06 21:40 게재일 2012-04-06 11면
스크랩버튼
강성위씨 세번째 한시집 `술다리(酒橋)` 푸른사상 펴냄, 182쪽

“기쁜 교분이야 오랜 사귐 새 사귐 구분이 없지만/그저 한스럽기는 일이 많아 만날 때가 잦지 않다는 것/하늘 얼고 땅 어는 게 무어 탄식할 것이랴!/술잔 들고 즐거움 함께하는 것이 곧 따뜻한 봄이거늘….” `歡交無舊亦無新 但恨事多逢不頻 天凍地氷何足嘆 含杯共是陽春 -冬日遺懷-`

한시(漢詩)는 어렵고 딱딱하며 진부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중국 문학 연구자 강성위씨<사진>의 세 번째 한시집`술다리(酒橋)`(푸른사상)는 이런 편견을 금새 날려 버린다.

한시의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내용은 현대적이다. 현대인의 삶과 애환을 한시만의 독특한 멋으로 풀어냈다.

표제로 쓰인 `술다리(酒橋)`는 술이 사람의 고독한 심사를 교통하게 해주는 다리라는 뜻.

“인간 세상은 험한 바다/사람은 모두 외로운 섬/그대와 나 함께 술잔 띄움은/다리 하나 서로 놓는 것”(人衆皆孤島 塵환是險洋 爾我共浮杯 一橋相築造 -致藝誠-)

이 `술다리`는 시인의 후배가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서 이 시집의 마지막 시편인 `致藝誠(예성에게)`를 읽고 언제 `주교(酒橋)`나 한번 놓자며 모임을 제안한 적이 있어 시집 제목으로 삼게 된 것이라고 한다.

“세상일에 갈래가 많아 만남이 곧 이별/술동이 아직 다하지 않았는데 새벽닭이 운다/본디 바닷물은 짜기가 비할 바 없나니/그대여, 배 안에서 눈물 뿌리며 가지 말게나”(世事多端逢卽別 酒樽未竭曉鷄鳴 由來海水鹹無比 君莫船中灑淚行) - `喜逢故友而翌日遠別(기쁘게 옛 친구를 만났으나 이튿날 먼 이별을 하다)`

▲ 중국문학 연구자 강성위씨

시집에는 `술을 대하고서(對酒)` 등 술에 대한 시가 많으며 그외 `겨울날에 울적한 회포를 풀다(冬日遣懷)` `봄을 맞으며 감회가 있어(迎春有感)` `꽃 핀 뒤 눈 내리는 밤에(花後雪夜)` `새 달력을 받고(新曆見贈)` `집사람이 금연을 재촉하다(妻促斷煙)` `우리 집이 싫어하는 것(吾家所嫌)` 등 일상적인 주제를 다룬 80수의 한시가 번역문과 함께 실려 있다.

`봄날 아침에 들길 거니는 것/여름 한낮에 계곡에서 멱 감는것/가을 저녁에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보는 것/겨울 밤에 소나무에 이는 바람소리 듣는 것`(春早行郊外 夏日泳溪中 秋夕望桐月 冬夜聽松風)-`四時四快(사시사철의 네 가지 즐거움)`

이 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적인 감회를 드러내면서 시 속에 하루의 현상 즉, 아침, 낮, 저녁, 밤을 춘하추동과 절묘하게 결부시켜 음양오행의 이치까지 담고 있어 운치가 더욱 우러난다.

`吾家所嫌(오가소혐)`은 가족들이 싫어하는 것들을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딸아이는 몸이 살찌는 것을 싫어하고(女息惡身肥)/나는 시구가 졸렬한 것을 싫어하는데(愚生嫌句拙)/우리 집사람은 두 부녀가(荊妻厭兩人)/걸핏하면 끼니 거르는 걸 싫어한다네.(動輒休餐)`

강씨는 일상적인 소재를 시에 담아내며 한시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이는 한시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몸짓이기도 하다.

이런 강씨의 `술다리`에 대해 맹문재 시인(안양대 교수)은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가 인생의 무상을 노래한 것이라면 강성위의 `술다리` 시편들은 삶의 긍정을 노래한 것이다. “술잔 들고 즐거움 함께하는 것이 곧 따뜻한 봄”이라고 했듯이 자신은 물론 인연이 된 대상들을 품고 공동체의 가치를, 곧 휴머니즘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제재들을 눈물에서부터 해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참신하게 변주하고 있는 그의 시편들은 “겨울밤에 소나무에 이는 바람 소리”조차 우리에게 즐거우면서도 인정 많고 또 소중하게 들려주고 있다”고 했다.

또한 김언종 교수(고려대)는 “어떻게 강성위는 일상의 곡진한 내용을 한시의 형식에 맞추어 섬세하고 굴곡 있는 감정을 한시의 격률(格律) 속에 담을 수 있었는지 표현할 수 있었을까?”라며 “그의 `晩秋訪友`와 같은 시는 당시(唐詩)에 섞어 놓으면 어느 것이 당나라 때의 시인이 지은 것인지 어느 것이 21세기의 한국인 강성위가 지은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