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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늙은이도 한 때는 젊은이였다

등록일 2012-04-16 21:16 게재일 2012-04-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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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편집국장

피 끓는 4월이다. 해마다 4월이면 환장하게 핀 꽃보다 교정을 덮는 매캐한 체루 가스의 기억이 더욱 강렬하다. 학창시절, 4월이면 캠퍼스는 온통 꽃동산이 됐지만 눈뜨고 그 꽃을 쳐다볼 여유가 없도록 최루 가스는 지독했다. 체루 가스는 캠퍼스는 물론 인근 동네 전체를 뒤덮었으니 학교 주변은 집값도 다른 곳보다 낮았다는 것 아닌가.

총선거가 끝이 났다. 여야가 12월 대선을 겨냥하고는 양보 없는 기 싸움을 벌였는데 결과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그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여야는 서로 젊은이들을 투표에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4년 전 18대 총선의 투표율이 46.1%. 역대 가장 낮았다. 야권과 소위 진보 세력들은 그 이유를 젊은이들이 투표하지 않아서였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보수층만이 투표를 해서 당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이번엔 젊은이들을 투표장에 끌어들여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투표 독려를 선거운동과 함께 벌여왔다. 20대와 30대가 투표를 해야 투표율이 올라간다는 전제다. 물론 그 젊은이들이 모두 보수 세력인 여당에 반대하는 진보 세력이고 종북 세력을 포함한 야권 후보에 투표를 할 것이라는 전제다.

여기서 나온 것이 “투표율 70%가 넘으면 ...” 이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망사 스타킹을 신겠다”고 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짧은 치마를 입고 노래하고 춤을 추겠다”고 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뽀글이 파마머리를 하겠다”고 했다. 소설가 이외수는 “삭발을 하겠다”고 했고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번지점프를 하겠다고 했다. 모두가 한 마디씩 했다.

그런데 그 조건이 투표율 70%였다. 투표율은 1985년 12대 총선 당시 84.9%라는 기록을 세웠고 20년 전인 14대 총선에서도 71.9%를 기록했지만 이후 내리 하향 곡선을 그렸다. 지난 18대 총선의 투표율이 46.1%였다. 어쨌든 그런 선전 덕분인지 이번 19대 총선의 최종투표율이 지난번보다 무려8.2%포인트, 그러니까 실제 17.8% 늘어난 54.3%였다. 그런데도 결과는 진보의 패배였다. 그런데도 야권에서는 이번 총선의 실패가 젊은 층의 참여가 저조했기 때문이라고 은근히 떠넘긴다.

젊은이들은 모두 야권에 투표한다고? 그럼 호남 지역에는 젊은이들만 살고 영남 지역에는 노인들만 사는 건가? 여당에 투표를 하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보수의 투표라고?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덕룡 대통령실 국민통합위원장, 이재오 국회의원,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도 모두 6.3세대들이다. 전국의 학생들이 이승만 독재정권에 맨주먹으로 항의한 혁명이 4.19였다.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로 헤게모니를 잡은 군사정권이 1964년 한일 굴욕회담을 시작한다. 대일청구권 협상이 벌어진 이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들이 바로 6.3세대이다. 군사독재와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들의 운동은 정부로부터 빨갱이로 몰렸고 50년이 지나서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는다. 지금 70을 넘긴 늙은이들이 당시 젊은 4.19세대였고 6.3세대였다.

그 뒤 1970년대 3선 개헌과 유신을 반대한 피 끓는 젊은이들은 지금 벌써 50대가 훌쩍 넘어섰다. 1980년대 군사정권 타도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젊은이들도 지금은 40대가 돼 버렸다. 그렇다. 지금의 늙은이들도 한 때는 모두 피 끓는 젊은이였다.

총선이 끝났다. 지금 한미 FTA를 반대하고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세력에는 젊은이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보수가 반드시 늙은이들의 전유물일 수만은 없다. 피끓는 4월, 이 4월이 가고 봄날이 가면 내년 봄이 다시 온다. 그동안 젊음은 더욱 성숙해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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