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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

등록일 2012-04-17 21:10 게재일 2012-04-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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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섬진강 3월은 매화꽃이 구름처럼 피어나고 4월엔 벚꽃이 도로 양편으로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섬진강은 봄꽃이 천지를 휘날리는 강이 됐다. 이른 봄에 피어 사람들의 가슴을 환희로 채워주는 벚꽃은 나무 중에 가장 사랑스럽다.

고도경주는 이즈음 벚 꽃잎이 시가를 덮고 있다. 보문관광단지가 준공되었던 1979년부터 벚나무가 엄청 심어져 벚꽃의 대명사처럼 불리어진 일본 동경 우에노 공원보다 꽃잎이 더 흩날린다고 한다.

초봄의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러운 벚나무는 지금 가자마다 꽃을 달고 있고 활짝 핀 꽃을 볼 때마다 보는 순간이 너무 짧다는 표현으로 세월의 빠르기를 견주기도 한다.

벚꽃을 지독스럽게 좋아하는 국가와 국민은 일본이다 보니 벚꽃과 얽힌 얘기가 많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벚꽃이 얕은 바람조차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집단전사를 부추겼다고 슬퍼했다.

꽃잎이 흩날리는 것처럼 일본의 남자로 태어난 제군들은 육탄전의 영웅이 되라는 노래가사로도 인용됐다. 일본의 무사도란 책에도 “꽃은 벚꽃” 벚꽃과 무사의 비장한 죽음을 대칭시켰다.

벚꽃은 생명에 집착하는 다른 꽃과는 달리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속깊이 환희를 심어주며 덧없이 돌아가고 바람에 흩날리는 비장함의 멋이 길게 이어진다. 필 때보다 지는 시기가 길다는 의미다.

은은한 난 향기는 더 명품이어서 세계인들로부터 귀한 사랑을 받는다.

여름에 피는 연 향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게 하는 향이다. 초여름 담벼락에 걸친 라일락 향은 감미롭고 싱그럽고 낭만적이다.

장미는 마음을 뺏는 꽃 아래로 내려가면 숨긴 가시에 찔리나 청춘남녀의 연정을 불러 오는 향이어서 더 가깝다.

채송화도 봉숭아도 담장을 기는 나팔꽃도 하나같이 정겨운 봄꽃들이다. 언제 이 땅에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킨 꽃들이다. 나팔꽃과 맨드라미의 고향은 인도, 접시꽃은 중국, 채송화는 남미, 봉숭아는 동남아시아가 고향이지만 이미 정이 짙은 한국인들의 정서가 베인 꽃들이다.

늦봄에 피는 밤꽃만큼 독특한 향은 없을 것 같다. 해질 무렵 바람에 실려 육신의 유혹을 실은 것 같은 비릿한 밤 꽃 향은 잠을 설치게 하는 향이라고들 한다. 예부터 시인 묵객들은 지는 꽃 들을 보면 청춘도 덧없이 가고 마는 세상무상을 노래했다.

봄을 가장 쉽게 풍성하게 느끼려면 남쪽 땅 지리산 하동 보성 일대의 연녹색 차밭이 가장 좋다. 그곳이 지리산 야생차 밭이면 더 좋다.

사람이 차씨를 받아 심으면 차나무의 밑 둥은 여러 갈래로 인데 비해 새나 산짐승이 옮겨 놓은 씨앗이 발아 되었을 경우는 밑 둥이 크게 하나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차도 흙 밭에서 자라는 것보다는 돌산 틈바구니에서 자란 우전 차는 기운이 강하고 여섯 잎 차 꽃 모양도 더 청아하다. 돌산에서 무림고수가 출현하듯이 차도 돌산에서 나오면 차 맛의 깊이 가 더 있을 까.

다섯 잎 차(茶)꽃의 꽃말은 영원한 삶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꽃말처럼 노란 꽃술을 감싸는 꽃잎색깔이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수수하다.

“살아가는 길이 너무 편안하게도 인색하게도 어렵게살지도 말라”는 해석이 붙어 있으니 고요함(靜)과 화경청적(化敬淸寂)으로 이끄는 데는 차 마시는 것이 단연 으뜸이다.

중국 8대 명차가운데 무이산(武夷山)에서 나는 명차를 무이암차(武夷岩茶)로 부르는 것을 보면 뭔가 다른 모양이다.

봄이 왔는데도 봄을 모르고 살아가는 게 도시 생활이다. 봄의 기운을 마음 껏 느끼고 그 속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게 삶의 도리이지만 그게 그만 세속의 틀 속에 허다하게 묶여 버리고 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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