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春心 적시는 꽃보다 아름다운 詩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2-04-20 21:35 게재일 2012-04-20 11면
스크랩버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생의 가치 노래 - 곽재구 시인 `와온 바다` 창비 펴냄, 136쪽

삶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해온 `사평역`의 곽재구(58)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와온 바다(창비)`가 출간됐다.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열림원, 1999) 이후 무려 12년이 지나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오랜 시간 가슴속에서 살아숨쉬던 아련한 추억과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시편을 선보이며 더욱 섬세해진 감각과 선명한 이미지로 웅숭깊은 서정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세파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순정하고 올곧은 시정신을 단련하며 벼린 시편들이 `참 맑은 물살`처럼 가슴을 적시며 잔잔한 울림 속에서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시 외에도 동화와 산문을 쓰며 10여년간 전업 작가로 살았던 시인은 2001년부터 순천대에서 시를 가르치면서 “갯길을 따라 걸어가면 비단으로 가리어진 호수”(`와온 가는 길`)가 나오는 `와온(臥溫)` 포구를 안식처로 삼았다.

“해는/이곳에 와서 쉰다/전생과 후생/최초의 휴식이다//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달은 이곳에 와/첫 치마폭을 푼다/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등이 하얀 거북 두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리어카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인간은/해와 달이 빚은 알이다//알은 알을 사랑하고/꽃과 바람과 별을 사랑하고//삼백예순날/개펄 위에 펼쳐진 그리운 노동과 음악//새벽이면/아홉마리의 순금빛 용이/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와온 바다` 전문)

와온이 `안의 안식처`라면 시인이 2009년 7월부터 1년 반 동안 머물렀던 인도의 한적한 시골마을 산티니케탄은 `밖의 안식처`라 하겠다. 문청 시절 타고르에 심취했던 시인은 “해는/달 속에서 뜨고//달은 해 속에서 뜨”(`산티니케탄`)는 그곳 타고르의 고향에서 “환멸과 탄식으로 가득 찬”(`보순토바하`) 영혼을 달래며 “붉디붉은 사랑의 시 한편/이 지상에 툭 떨굴 날 부끄러이 생각해”(`붉은 시전지`)보기도 하면서 “낯선 세계에 깊숙이 몸을 담그는 체험을 통해 새로운 시를 찾아”(최두석, 해설) 나선다.

“가난하지만 인간미가 살아 있는 그곳에서 시인은 자연과 더불어 아름답고 소박한 삶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인생의 순결한 가치를 깨닫는다. 십오년 동안 맨발로 살아온 열다섯살 소녀 론디니(`론디니`), 붓을 잡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화가 타판 치트라 카르 포투아(`화가`), 불가촉천민의 마을에서 연을 날리는 맨발인 아이들(`적빈 5`)…. 이들의 삶 속에 스며 있는 고결한 삶에 대한 인식을 시인은 `적빈(寂貧)`이라 명명하며, “시를 쓰고 살았다는 지상의 내 이력이 부끄럽고 부끄러웠다”(`화가`)고 고백한다.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로 채색된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곽 시인의 시는 가슴에 젖어드는 대로 따뜻하고 편안하다. “급히 서둘거나 과장된 무리한 몸짓을 하지 않”고 “강물이 흐르듯 유연한”(민영, 추천사) 그의 시는 삶의 의미를 일깨우며 인생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힘을 불어넣어준다.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추억하며 “이승의 제일 맑고 시원한 호수로 소풍 가는”(`나한전 풍경`) 새로운 시간을 꿈꾸는 그의 시는 고단한 삶의 길모퉁이에 서 있는 희망의 등불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