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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부재에 대한 따뜻한 그리움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2-04-20 21:35 게재일 2012-04-2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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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 시인 `꼭 같이 사는 것처럼` 문학동네 펴냄, 124쪽
임현정은 2001년 `현대시`로 등단해 시인으로 12년을 살았다. 그리고 드디어 첫 시집 `꼭 같이 사는 것처럼(문학동네)`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젊은 시인들이 등단 2, 3년 만에 첫 시집을 내고 주목을 받는 것에 비하면 아주 느린 걸음이다. 그러나 시집을 펼쳐보면 그 숙성의 시간이 시 안에서 얼마나 빛을 발하는지를, 독자들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이번 시집의 해설에서 “입구와 출구, 심연과 표면, 전과 후 등등이 사라진 무한 연쇄와 반복이” “타당한 질서이며 유일한 지형도롤 자리 잡는” 이 세계에서, “임현정의 시는 세계 자체를 결여한 세계에서 태어나는 마이너스 세계의 시, 존재 자체를 결여한 존재가 빚어내는 마이너스 존재의 시, `시의 시간`의 불가능성을 직시하는 시인의 빈곤한 시간을 본뜨는 마이너스 시간의 시”라고 역설한다. “증발해버린, 부재하는 시의 시간 자체를 시의 육체로 삼”아 “근원을 상실한 현대시의 운명 자체를 시화하면서 그로부터 새로운 시의 시간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고서 시인은 “소유한 적 없는 것들의 부재와 끝없는 상실의 와중에 있는 세계에서 텅 빈 `그것`을 어떻게 투명하게 응시할 수 있는가를, 그 `없는` 의미에 꼭 맞는 단어와 수사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무한한 수고가 왜 필요한 것인가를 천천히 헤아린다.” 바로 여기에서 공들인 시간의 깊이가 이 시집 안에서 어떻게 형상화되는 것인지 가늠하게 된다.

끔찍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뒤틀린 세계에 존재하는 상실과 부재. 임현정이 이번 첫 시집에서 수행하고 있는 것은 지독한 응시를 통해 그것들의 목록을 담아내는 일이다. 지금 여기 텅 빈 부재의 공간에 석고를 부어 그것들을 떠내는 일을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래 바라볼수록, 오래 정성을 들일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작업. 시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쥬리엣 의상실이 아니라,/ 쥬리엣의 상실”이기에 응시의 시간은 오롯이 시에 스며들어 구덩이 같은 깊이로 자리한다. 그것은 이미 없는 것이지만 임현정의 시로 인해 다시, 있는 것이 된다. 마침내 상실과 부재의 목록들이, 그 `없는` 것들이, 지금 여기 시로 다가와 “꼭 같이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임현정의 시에 깔려 있는 것은 이 세계의 빈 구멍들과 “후미진 곳”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단편적이고 단면적인 시선을 경계하면서, 세계의 불가해한 양상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그리고 조금은 애잔하다. 마른 잎이 뜨거운 물에 풀어져 모양과 향기가 되살아나는 시간. 너무나 어렵게 존재의 눈앞에 당도한 `시`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드는 이 세계에서 임현정은 그 자체가 바로 시의 시간임을, 그것을 견디고 끝내 써내는 것이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시의 시간임을 이야기한다. _김수이 해설 `없는 가게`의 빈 의자에서 시 쓰기에서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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