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잠깨어` 정약용 지음, 정민 풀어 읽음, 문학동네 펴냄, 296쪽
`주역`에 감지(坎止)란 말이 있다. 물이 흘러가다가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다 채워 넘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면 나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상처만 남는다. 묵묵히 감내하면서 자신이 구덩이에 빠진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하며, 구덩이를 다 채워 흘러 넘칠 때까지 수양하며 기다릴 뿐이다. 다산의 유배 한시는 이렇듯 환난과 역경과 시련 속에 처한 인간이 절망과 분노와 좌절을 극복하고 본래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다산의 위대함은 그가 이룩한 놀라운 성취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성취가 이런 절망을 딛고 나온 것이어서 우리는 그에게 더욱 놀라고 경탄한다. 보통은 작은 시련 앞에서도 남 탓하며 세상을 향해 원망과 적의를 품게 마련이다. 좌절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다만 그때의 내 자세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시련이 닥쳐오기 마련이고, 좌절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조선 후기 최고의 석학 다산 정약용 역시 그러했고, 그에게 닥친 시련은 더 엄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련과 절망에 넘어지지 않았다. 그 시련의 시간들 속에서 그는 조선 후기의 가장 위대한 지적 저작들을 내놓았다. 그 학문적 성취도 위대하고 아름답지만,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고뇌했던 그 인간적인 노력과 흔적들이 더 위대하고 아름답다. 그 비록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으나 18년에 이르는 전체 유배 기간 중 전반 10여 년 동안에 이뤄진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를 버리지 않고 본연의 나를 찾으려 했던 다산의 길은 “환난에 처한 인간이 지녀야 할 바른 자세를 들여다보기에 부족함이 없다”(`머리말`에서)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