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 오만, 속 좁은 리더십, 소통 부재, 폐쇄적인 의사결정... 하나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다. 한 사람을 평가하면서 원칙과 소신이라는 긍정적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이런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리는 것은 모든 사물이 갖고 있는 빛과 그늘이라는 양면성으로 비춰볼 때 일면 당연해 보인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두고 하는 평가에서다.
대통령 선거가 5개월 남짓 남았다. 이번 대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의 후보로는 박 전 비대위원장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지금 박 전 대표는 누가 뭐래도 부동의 절대 강자이자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 0순위다. 그렇다고 아직 후보가 된 것은 아니다. 그 후보 선정 절차를 놓고 박 전 위원장 측에서는 이미 따 놓은 당상인 듯 당내 후보경선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그는 지금 필요없는 문제를 만들기보다 빨리 후보로 확정짓고 본선을 대비하고 싶을 것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뜻일 거다.
언론에 비치는 박 전 위원장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간접화법이다. “전해졌다”거나 측근을 통해 “한 것으로 보인다” 등이다. 다른 여야 대권을 넘보는 예비 대선 후보군의 직접화법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들은 TV나 라디오에서 공개 인터뷰를 하거나 신문과 직접 인터뷰하고 각종 토론회에도 참석해서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박 전 위원장은 말이 없다. 참으로 의례적이고 공식적인 이야기 밖에는 나오는 이야기가 없다. 심지어 대권 출마선언 자체도.
그는 당내 경쟁 상대인 대권 후보들이 요구하는 이른바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역선택이나 조직 동원 등에 대한 문제를 들어 반대했다. 속으로는 5년 전 당시 이명박 후보와의 경선을 생각하면 적반하장이라는 주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선 상대들과 아예 협상조차 않는 태도는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리더십에 의심을 갖게 만든다. 리더십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대자들에게 설득해내는 능력이다. 그걸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정적 이미지를 각오하는 이유는 대세론에 있는 듯하다.
지금 박 전 위원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대세론이다. 우리는 15년 전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이 어떻게 결판났는지를 보았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 경험칙을 되풀이하는 것은 바보들의 짓이다. 새누리당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정당의 존재 이유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떤 비평이나 작은 소리들도 귀담아 듣는 낮은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선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론 중 노엘레 노만이 주창한 `침묵의 나선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특정한 의견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정되고 있다면,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다수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해 침묵하게 되는 경향을 말한다. 이른바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소신을 감추고 침묵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과거 투표는 투표자 개인의 성향을 거의 알 수 있었다. 비밀투표였지만 투표와 개표 방법이 사실상 개인의 투표성향을 어느 정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그래서 침묵의 나선이론이 투표에서도 적용됐을 가능성이 짙다. 지금 일부 정당의 내부 투표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무더기 투표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긴 선거에 돈봉투가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 것도 그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은데 따른 침묵의 나선의 또다른 결과이다.
대세론이 투표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선거가 끝나면 드러날 것이다. 대세론에도 역선택의 덫이 놓여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여론조사가 자주 틀리는 이유이기도 하고 대세론이 꺾이게 되는 이유일 수도 있다. 요란하다고, 떠든다고 모두가 다 동의한다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소신이나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고 이젠 우리 국민도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