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주변에서는 내가 어쩌면 재테크에 그렇게 무신경할 수 있느냐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사실은 나도 재테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사를 해야 하는데 살아가면서 하나 둘 늘어난 잡동사니들을 모두 쓸어 담았다가 다시 펼쳐 낼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게으른 탓일 것이다.
배가 아팠다. 집이란 그냥 살면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편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들이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도 돈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의 나태와 정보 부족에 룸메이트를 타박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서 막차를 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은행에서 주택담보 대출이나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올해 당장 갚아야 하는 대출만도 100조원이나 된다고 한다. 120만 가구가 대충 8천만원 꼴이란다.
한 때, 부동산 붐이 일어 너도 나도 아파트 청약에 몰려 들 때가 있었다. 같은 평수의 새 아파트가 헌 아파트보다 더 가격이 낮거나 비슷해서 이사를 가면 돈이 남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 빚을 내서 아파트를 샀던 많은 사람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는 이유 때문에 빚을 내서 아파트를 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되레 내리막길을 타니 사단이 생긴 것이다. 그 숫자가 만만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주택시장의 위축,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그 부동산이 아파트에 치중해 있음이 작금 대거 등장한 `하우스 푸어`로 인해 더욱 분명해졌다. 60대 이상은 70%이상 대부분의 재산이 부동산이라고 한다.
노후준비는 안 돼 있고 가진 것이라고는 평생의 한이었던 내 집 한 채가 전부인 사람들. 그렇지 않더라도 수입은 줄어드는데 집값으로 대출한 은행빚 이자 갚기가 급하고, 그런데 아파트를 팔아서 빚을 갚자니 오히려 집값이 떨어져 그야말로 쫄딱 망하게 생겼다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자주 본다.
인구 증가율이 뒷걸음질하고 있다. 5천만 명을 돌파했지만 한시적이라지 않는가. 수년내로 인구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대구만 하더라도 해마다 늘어나 지금은 전체 가구수의 22%가 1인가구라는 통계다. 그들 중 상당수는 민간 건설회사가 짓는 아파트를 살 여력이 없고 원룸이나 전세방을 찾고 있다. 그런데도 주택 공급은 인구증가율을 추월하고 있다.
아파트업자의 아파트 분양 광고가 꾸준히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이런 현실적인 주택 정책과는 상관없이 아파트 건설업자들은 아파트를 지어서 팔아야 회사가 세금도 내고 이윤을 내서 직원들을 먹여 살릴 것 아닌가.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에게 이 많은 아파트들이 여전히 필요할까. 집값이 올라가고, 그래서 감가상각보다, 은행에 돈을 맡겨놓는 것보다 훨씬 남는 장사가 될 때라야 집을 살 것이다. 그때는 집을 가진 사람이 두 채, 세 채 집을 사서 전세를 놓고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 날 것이다. 여당이 땅에 떨어진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대책을 마련한다지만 귀가 번쩍 뜨이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12월 대선에서는 모두가 집 걱정 없는, 집을 투기대상으로 삼는 사람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