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안개 주의보` 문학과지성사 펴냄 이용임 지음
2007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서 “상투성을 훌쩍 벗어난 독특함으로 미정형이긴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으며 등단한 이용임은 소시민의 일상을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등단작`엘리펀트맨` 이후로 주변의 익숙한 사물들을 그로테스크하게 이미지화하며 건조하고 이지적인 묘사로 눈길을 끌어왔다.
시인의 이러한 특장점이 도드라진 시들이 모여 6년 만에 첫 시집으로 묶였다. 이 시집은 마치 하나하나 방문을 열 때마다 늘 똑같은 창문이 있는 비슷비슷한 방처럼 죽음과 이별의 기시감이 감도는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시인 장이지는 이에 대해 “하나의 원풍경이 각기 다른 이상기후를 몰고 유령처럼 귀환한다”고 표현했다.
“당신이라는 안개 속에서의 삶
먼저 당신의 코가 사라진다
물렁한 벽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검은 방에서
채 스미지 못한 내 체취가 흘러나온다
당신의 입술이 사라지자
망설임은 맨발로 배회한다 허공을
눈 가리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당신의 귀가 하나씩 흘러내린다
나의 목소리가 차가운 물방울로 고인다”
-`안개주의보` 부분
이별 후 당신의 형상은 이제 흐리마리해져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지상을 가득 메운 안개처럼 당신이 편재하는 세계를 화자는 살아가게 된다.
깍지 낀 손(`일요일`)이 풀어지고 연리지(`일기예보`)가 끊어진 연인들은 `반쪽 무덤`이 된다. 이 시집의 표제작 `안개주의보`에서 묘사되는 안개 속에는 `죽은 당신`이 천천히 스러지고 있다. 손발이 뭉그러지고 머리카락이 나부끼고 숨결이 아득한 윤곽이 되는 당신의 안개 속에서 제대로 된 삶은 불가능하다. 화자가 숨 쉬는 세계의 모든 것이 녹고 묽어지고 흘러내리다 사라져버릴 뿐.
시집 `안개주의보`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심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어떤 기시감과 반복 속에 섬뜩한 괴로움을 드러낸다.
얼음처럼 차가운 슬픔, 거울 조각의 바다에 올려놓은 맨발처럼. 당신이 없는 일상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안개`를 둘러치고 `맑은 뼈`의 창문을 세우고 애도의 시간 속에 깊이 웅숭그리고 있던 그녀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비행”을 예감하며 스스로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그럼으로써 이제는 기억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자기 본연의 표정을 드러내고 원숙한 아름다움으로 새로 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