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적어도 더위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원한 동해 바다가 있는 포항으로 피서를 왔다고 안심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대구 기온이 섭씨 36도, 37도를 오르내리면 포항도 0.2~0.3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더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열대야도 연일 계속됐다.
잠 못 드는 밤, 해변에 나가면 빛의 축제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북부해수욕장에서 건너다보는 포스코의 야경은 홍콩이나 하코다테의 야경과는 또 다른 빛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푸른 바다 저건너, 멀리 동해바다를 안고 있는 포스코는 낮이면 쇳물을 끓여내는 공장이더라도 밤이 되면 저렇게 동화속 같은 환상과 현실의 조화를 연출한다.
파파팡, 따당, 쿠콰쾅... 잇달아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꽃들. 그 형형색색의 장관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황홀경이다. 폭죽이 쏘아질 때의 폭음에 이어 하늘을 날아오를 때의 그 소리들이 잇달아 연출하는 빛의 잔치다. 살아있는 빛으로, 거대한 불꽃으로 밤하늘을 장식하다 아쉬움처럼 꼬리를 감추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불꽃놀이는 포항의 여름밤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불빛 축제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찬물 한바가지 덮어쓰면 아직도 불꽃의 잔영이 천정에 그려진다. 그 시각, TV에서는 런던 올림픽 소식이 계속된다. 열대야에 뒤척이다 일요일 새벽엔 축구종가 영국을 꺾는 낭보를 만난다. 카디프에서 날아온 우리 홍명보호의 쾌거는 더위에 지친 국민들의 피로를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이번 올림픽은 비록 오심으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는 태극전사들의 투혼을 볼 때면 더위도 잠도 싹 가신다. 지난 주엔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의 어이없는 실격과 판정번복, 유도 조준호 선수의 판정 번복 등이 울화를 돋우기도 했다. 그러나 박 선수와 조 선수가 판정 번복에 보란듯이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로 되갚아 국민들의 여름밤 더위를 식혀 주었다.
펜싱의 신아람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오심 판정으로 메달을 놓쳤다. 억울한 판정은 당사자인 신 선수는 물론 TV를 지켜본 국민들의 울분을 자아냈다. 1초. 긴 1초. 1시간 넘게 피스트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위로조차도 받지 못하고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피스트를 지켰던 신아람. 그녀의 메달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국 여자 핸드볼은 경기마다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한다. 덴마크를 이겼을 때, 그 극적 승리, 전 후반 30분간 24대 25라는 1점차 짜릿한 승리였다.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상대. 그러나 넘겨줄 수 없는 승부. 앞으로 결승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충분히 즐거움과 흥분을 선사했다.
노르웨이와는 비겼다. 27대 27. 1분을 남겨놓고 26대 27로 1점을 뒤지고 있던 우리 딸들은 30여 초를 남겨놓고 동점을 만들었다. 4년전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 2골차, 3골차, 다시 2골차로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마지막 6초 전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28대28. 그러나 그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1골을 먹었다. 그 분풀이를 한 것이다. 6초를 버텨내지 못했던 4년 전에 비하면 30초를 지켜낸 이번 런던 올림픽이 더욱 장하다.
어디 이들 뿐인가. 27세 경상도 청년 김재범도 독일의 올레 비쇼프를 상대로 4년 전 베이징에서 진 한을 풀었다. 그는 지난 해 모교 동지상고를 찾아 후배들에게 “모두가 아픈 순간이 있는데, 그걸 딛고 일어서면 꼭 승리하게 된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어느 광고 멘트처럼, 눈물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낸 투사들의 승전보는 그래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