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꺾었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 3.4위전에서 숙적 일본에 2대 0 완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절을 앞둔 일본과의 라이벌전은 그야말로 한반도를 달구었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한 다음이어서 의의는 더욱 컸다. 병역 문제로 코너에 몰렸던 박주영의 원맨쇼같은 발재간이 일본 수비를 따돌리고 골망을 흔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쳐댔다.
TV에서는 목이 쉰 해설자와 아나운서의 밑도 끝도 없는 찬사와 칭찬과 자랑으로 넘쳐났다. 선수들에게 그동안의 땀과 노력들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그러나 감동은 국민의 몫이다. TV에서 먼저 흥분하고 감격해 버리면 국민들은 뭐하나? 그렇지 않아도 우리 올림픽 대표들에게 필요 이상의 부담감을 준다는 비난이 일고 있는 판인데 말이다. 아직도 국민소득 1만 달러도 못되던 때처럼 운동 경기를 값싼 애국심과 연결시켜서는 곤란하다.
“버텨야 합니다. 30초 남았습니다” “아, 저러면 안되는데...” 일부 격투기 경기에서 해설자의 탄식과 응원은 시청자들의 자리를 아예 없애 버리기도 했다. 도대체 중계방송인지 해설인지 응원인지 코치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연금도 주고 포상금도 주는 식의 국가적 이벤트이긴 하지만 해설자의 양식은 그야말로 민망하고 안타깝다. 경기장에 가서 응원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은 경기장의 분위기와 선수들의 경력과 특징, 배경과 개인적인 이야기와 경기에서의 전략 같은 것을 알고 싶다. 흥분하고 열광하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다. 시청자가 감격할 수 있는 공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방송에서 먼저 흥분하고 감격하고 난린가?
4년을 준비했다. 그 인고의 시간, 오로지 승리만을 바라보고 준비해 왔는데. 뛰어보지도 못하고 실격패라니. 거기다가 국민적 기대를 뒤로 하고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공항 뒷문을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다. 여자 배드민턴 복식조 선수들 이야기다.
C조의 하정은-김민정조는 이미 2연승으로 8강 진출이 확정됐다. 더구나 조 1위가 되면 세계 최강이면서 져주기 게임으로 A조 2위가 된 중국팀 왕샤올리-위양조를 만나게 된다. 자연히 져주기 게임이 나왔다.
시작은 세계 랭킹 1위 중국의 왕샤올리-위양조였다. 두 사람은 세계 랭킹 2위인 같은 중국의 텐칭-자우윈레이조와 결승전 이전에 만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2위를 하려고 한국 정경은-김하나조와의 최종전서 져주기 게임을 했다. 동네 아줌마들 아침 운동보다 못한 경기를 올림픽 무대서 연출했다. 일부러 서브를 네트에 맞히고, 상대의 공격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추태를 벌였다. 연맹의 징계에 한국은 중국의 `장난`에 놀아났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창피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다. 올림픽 정신보다는 오로지 메달만 바라본 결과였다.
또 있다.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귀국을 대회가 끝날 때까지 강제 억류 시키려다 결국 풀었다. 그러나 메달리스트들을 한꺼번에 귀국시켜 온 국민들이 보는 데서 카퍼레이드도 벌이고 플레시 세례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색을 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을 앞두고 휴일은 커녕 휴가조차 제대로 다녀오지 못한 선수들이 이제 부모와 가족을 만나 메달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인간적인 소망조차 막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경기가 끝난 선수들이 반발하며 귀국하려 하자 “국가대표로 나왔는데 그렇게 협조하지 못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니, 늦었지만 다행이다.
런던올림픽이 끝났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감동은 계속 될 것이다. 그 감동은 메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선수들,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겨낸 선수들과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해 준 국민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메달은 그 다음이 되어야 한다. 이제 최선을 다한 모든 선수들에게 꿀맛같은 휴식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