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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마음까지 읽어내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2-08-24 20:43 게재일 2012-08-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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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옆구리의 발견` 창비 펴냄 이병일 지음, 128쪽
▲ 시인 이병일

2007년 `문학수첩`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활달한 생명 감각이 숨쉬는 생기발랄한 언어와 일상의 세목을 재현하는 정밀한 묘사가 어우러진 단정한 서정의 세계를 펼쳐온 이병일 시인의 시집 `옆구리의 발견`(창비)이 출간됐다.

등단 5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사물의 세미한 움직임을 간취하면서도 존재의 시원적 원리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유성호, 해설) 심미적이고 감각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준다.

소멸의 이미지들을 감싸안으며 삶의 단면을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 존재의 기원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사유, 사물의 마음까지도 읽어내는 섬세한 감성이 신선한 감동을 자아낸다.

“오늘 나는 담장을 쌓아올리며 겨우내 잠자던 어깨 근육을 흔들어 깨웠다. 돌덩이 하나 놓고 수박만한 태양을 놓는다. 돌덩이 하나 놓고 굴참나무숲 그림자를 놓는다. 곰곰이 바람의 각도와 수평을 맞추고 또다시 돌덩이와 재미없는 한낮의 하품을 마저 놓는다. 그때 나는 줄곧 이 담장 타기를 좋아하는 장미나 능소화의 유쾌한 질주를 생각한다.//나는 자명하게도 담장을 쌓는 일에 끝없는 동작으로 있는 힘을 탕진 중이다. 누가 또 돌담을 쌓아 격장(隔墻)을 이루는가, 그러나 나는 돌담처럼 맑디맑게 정다울 것이다.”(`격장`부분)

이병일 시인은 가파른 현실을 초월하기보다는 삶의 무게를 오롯이 품어 안으면서 생을 견디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다른 형식을 투시하고 탐색해나가는 열정을 보여준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발이 닿지 않는” 생의 심연을 바라보며 “아프도록 멀리 있는 병이 씻기”(`우물`)도록 삶의 근원적 치유를 꿈꾸는 시인은 “세상의 옆구리에 박히는 붉은 심장의 박동을 세어보기 위해”(`옆구리의 발견`) 격장을 이루어가면서, “뼈 울음 같은 고락”(`빙폭`)의 “파동이 있는 곳을 응시”(`파랑의 먼 곳으로부터`)함으로써 맑고 심원한 세계로 가닿고자 한다.

“아직 봄은 저 바깥에 머물고 있었던 거다/나무는 봄이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피안을 끌고 들어가는 꽃송이와 새순을 토해낸 거다/그러니까 이제 봄비 그친 직후, 꽃나무를 보는 것은 멀리하자/밀려나오는 꽃순 소리는 새파란 음악이 되었다/그건 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꿈이었다, 생이 가려웠으나/당신은 아름다움 끝에 있는 폐허를 좋아했다/새순과 꽃송이엔 흉터가 자라고 있었다/바깥이 바깥 안에 든 다른 생으로 몸을 바꿨다/오늘 당신은 낮에 나온 꽃자리를 보며 생을 찾아간다/그러나 흰 영구차의 매연이 눈부시게 빛날 때처럼/이 바깥 세계에 있는 세상은 세상 아닌 듯 투명해졌다(`아직 봄은`전문)

삶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시인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건넨다.

“거름자리를 파헤치는 갈퀴 발의 노동”(`닭발이 없었다면`)의 신성함과 “제 생을 위태롭게 허공에 매”단 “일용직 거미인간들”(`사소한 기록`)의 삶을 놓치지 않는 시인의 눈길은 나아가 “칠흑 밤마다 많은 맨발들이 숙명으로 국경을 넘고 넘는”(`꽃제비`) 탈북자들의 세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병일은 최근 5·18문학상을 수상하며 새삼 주목받고 있는 “젊고 진지하고 상당히 세련된 시인”(정희성, 추천사)이다.

우리는 사물에 대한 남다른 사유를 바탕으로 존재론적 기원을 탐색해가는 그가 “감각의 파동과 삶의 기원을 동시에 노래하는 시인”(유성호, 해설)으로서 자신만의 아우라를 견지하며 더욱 참신한 목소리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나갈 것임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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