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밉다. 이 사회 어디에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으니 한 몸 의지할 곳이 없다. 그렇다고 혼자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경쟁 사회에서 탈락한 사회적 낙오자들의 세상을 향한 적개심이 `묻지마 범죄`의 탄생 배경이라고 사회학자들은 주장한다. 직장 동료를 살해하려 하고, 이웃집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묻지마 범죄가 우리를 불안케 만든다. 그런 막장 심리를 가진 경제적 약자들이 수십만에 이른다고 언론은 예측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소위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이 그것이다. 지난 주 대법원은 가해학생 중 한 명인 그(26)와 그 어머니(52)에게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미 구속돼 1년6월의 형 집행중인 그는 2년6개월의 형을 살아야 하게 됐고 그 어머니는 법정 구속되는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남학생 셋에 여학생 한명, 이렇게 의대생 4명이 여행을 갔다. 지난해 5월. 펜션에서 남학생들은 술 취해 잠자고 있는 여학생을 성추행했다. 동료 의대생의 속옷을 벗기고 신체 일부를 만지고 그리고 사진도 21번이나 찍었다.
여론이 빗발치자 법원은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학교는 이들을 복학할 수 없도록 출교 조치했다. 남학생 셋이었으니 주범이 있을 것이고 종범도 있을 터.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갔을 뿐 너무 억울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법원은 그들 중 한 명에게 징역 2년 6월을, 나머지 두 명에게는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1년6월을 선고받은 그가 그랬던 모양이다.
지금껏 쌓아온 공든 탑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소위 명문대 의과대학생이 될 때까지 걸어왔던 멀고 험한 길.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돈과 명예가 보장되는 의사로서의 명예로운 삶을 포기하기에는 자신의 죄에 비해 벌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그를 뒷바라지해온 그의 어머니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 모자는 피해자인 여학생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됐다. 그와 그의 어머니는 피해자인 여학생에 대해 “인격장애적 성향 때문에 이번 사건이 크게 부풀려졌다는 견해가 많다”는 내용이 담긴 `사실확인서`를 만들어 대학내 의대생에게 배포한 것이다.
재판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피해자의 피해는 안중에 없는 태도를 보이는 등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들의 구명을 위해 저지른 것으로 정서적 감정적으로 납득하고 동정할 여지는 있지만 딸 가진 부모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보라”며 “반성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지성과 사회적 지위와 그에 걸맞는 경제적 예우까지 보장받는 파워 엘리트들. 그들의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자리와 몫을 빼앗아 가는 꼴이 되기도 한다. 또 그들의 범죄와 비교해서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의사가 되고 판사가 되면 우리 사회는 과연 그들을 존경할 수 있을까.
이들의 반대편에 사회의 냉대 속에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약자들이 있다. 그들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껴안아야 한다. 그것이 묻지마 범죄를 줄여 나가는 길이고 그런 사회안전망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에는 가진 자들의 양보와 절제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도덕적 수준 이상까지 필요하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12월 대선은 그런 것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