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랏골의 비가` 창비 펴냄 송기숙 지음, 508쪽
송기숙은 한국 현대사의 엄혹했던 시절과 정면으로 맞서온 작가다. 치열한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으며, 특히 동학농민운동을 장구한 이야기로 풀어낸 대하소설 `녹두장군`,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장편 `오월의 미소`등 깊이있는 역사의식과 토속적인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담긴 다수의 뛰어난 작품들을 선보이며 민족문학의 중추 역을 담당해왔다. 그의 첫 장편 `자랏골의 비가`는 3·1운동 전해(1918)부터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거쳐 4·19혁명(1960)에 이르기까지 남도의 한 촌락이 겪은 수난과 항거의 역사를 기록한 우리 민중문학의 역작이다.
작품의 배경은 전라도의 어느 벽지인 `자랏골`이다. 순박하지만 평생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자랏골은 물론 인근 지역의 제일가는 유지인 이양문 일가의 존재이다.
이양문은 일제 치하에선 일본의 비호 아래 위세를 떨치고, 해방 이후엔 자신이 독립운동자금을 비밀리에 대왔다는 거짓말과 국회의원 아들의 위세에 힘입어 자랏골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소설은 자랏골 최고의 명당자리에 이양문이 자기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자랏골의 주민들로서는 동네를 굽어보는 명당에 사욕을 위한 묘가 자리잡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일제시대엔 묘의 이장에 반대하는 이들을 일본 헌병과 순사들이 잔혹한 폭력으로 진압하고, 한국전쟁 때는 이 묘가 국군과 인민군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구실이 되며, 전후 자유당 독재시기에 이르면 이양문과 마을 주민 간의 뿌리 깊은 불신과 증오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