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조두순, 김수철, 김길태, 오원춘, 오종석…. 그 이름만으로도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들의 섬뜩한 범행이 우리를 전율케 만드는 흉악범들이다. 강도사건, 성폭행범…. 반사회적,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영원히 우리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형제 이야기다.
사형제의 존폐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부활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최근 “(흉악범에 대한 사형집행에 대해) 저는 사형제 폐지는 신중하게 고려할 일이지 폐지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며 사형제를 옹호했다. 박 후보는 “상황에 따라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아동 성폭력과 같은 강력범죄에 사회적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인혁당 사건`을 기억하지 않느냐. (재심에서) 무죄가 났지만 무고하게 죽었다”면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인혁당 사건은 박근혜 후보에게는 들추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비록 그 사건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박정희 프레임에 갇혀 있는 박 후보에게는 인혁당 사건을 들먹이는 자체만으로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주 세력들의 데모가 치열해지던 1974년 4월3일, 민청학련이 공산계 불법단체인 인혁당 재건조직과 좌파, 혁신계 인사가 복합적으로 작당해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며 교수 학생 등 254명을 구속한다. 5월27일 비상군법회의를 통해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내란선동 등 혐의로 기소된 우홍선, 송상진,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도예종, 김용원, 여정남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1년 뒤인 1975년 4월9일, 대법원은 이들 8명에게 사형을 확정한다. 그들은 형 선고 다음날 새벽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리고 32년이 흐른 지난 2006년 12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는 사형 집행된 피고인 8인의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음모,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강간 살인 사건과 인혁당 사건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고 그 무게를 논하는 것은 논의의 대상을 혼동하는 것이고 논점을 일탈한 명백한 오류다. 어떻게 흉악범과 양심범, 소위 공안사범을 같은 반열에 놓고 논할 수 있는가. 지금 강간살인범에 대한 사형 논의에 인혁당 사건을 끼워 넣어 전선을 확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일 뿐 사건 해결의 본질은 아니다. 그리고 흉악범에 대해서는 영원히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도 있다.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여전히 사형제도가 합헌이며 다만 사형 집행만 15년째 미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만도 60명이 된다고 한다. 물론 사형제가 범죄률을 낮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흉악범이 웃음 짓는 것을 보는 것은 특히 피해자 가족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22년 전 9살이던 딸 베키 오코넬을 성폭행 살해한 범인 도널드 묄러의 사형 집행을 지켜보기 위해 2천500km 떨어진 형장으로 찾아가는 베키 부모의 이야기가 화제다. 사형제 논의를 코미디라고 냉소한 오원춘 사건 피해자 유족의 말을 되새기게 만든다. 살인 사건 피해자나 그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1만분의 1이라도 위로해주고 보상해주기 위해서라도 사형 선고와 사형 집행을 고려해 봄직하다. 개인의 보복을 법으로 금지한 것은 국가가 대신 형벌로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전제에서다. 그것이 법치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