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조선을 말하다` 아트북스 펴냄 조재모 지음, 264쪽
여기서 `체제`란 건축 행위에 전제된 계획 같은 `건축적 요소`와 궁궐의 실제 운영 방식·역사적 변화 같은 `건축 외적인 요소` 모두를 일컫는다.
저자는 `어떻게 사용하려고 만들었는가`와 `실제로 어떻게 사용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조선의 제도와 이념이 궁궐에서 어떻게 구현됐는를 입체적으로 살핀다.
공간 구성이나 배치 등의 건축적 요소가 궁궐의 하드웨어라면, 운영 방식 등의 건축 외적인 요소는 궁궐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다.
1부 `궁궐, 그 복잡한 얼개`에서는 건축을 읽기에 앞서 궁궐 운영을 둘러싼 여러 키워드를 다뤘다. 궁궐의 계획 개념과 운영법이라 할 의례 문제, 의례 속에서 살아간 왕실 사람들의 존재를 살폈다. 2부 `규범과 관습의 타협, 궁궐 건축`에서는 궁궐 배치·공간 구성 등 물리적 실체로서 건축 공간을 이야기했다.
1부에서 언급한 의례라는 운영체제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하드웨어가 최적화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례와 궁궐 건축이 주고받는 관계가 2부의 주제이다. 3부 `궁궐을 뒤흔든 욕망`에서는 궁궐 운영의 규범에 균열을 낸 욕망과 그로 인한 건축적 변모를 조망했다. 절대 권력의 취향·근대화·외세의 영향력 등이 궁궐을 변모시킨 요소들이다. 결국 궁궐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규범 바깥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축 공간이기에 이러한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가인 저자가 오랫동안 공부하고 답사하며 축적한 풍부한 문헌자료의 해석을 통해 이미 소멸한 건축 유형인 궁궐의 속살을 세세히 살핀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 특유의 안목의 깊이와 새로운 관점을 만나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궁궐 건축뿐 아니라 그 건축 뒤에 자리한 정치적 의미를 살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세종의 경복궁 정비를 예치의 차원에서 진단하는 것이나, 성종 대의 대비전 영건을 `대비의 수렴청정에 대한 임금의 도덕적 리액션`이라는 상징적 행위로 읽는 점 등이 그렇다.
또 책 곳곳에서 저자는 문헌이 증언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가설을 제시해 흥미롭다. 제사용 건물이나 빈전이나 혼전으로 오랜 기간 사용된 편전 전각에 복도각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복도각이 제사의 형태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는 추측 등은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해 새로운 학문적 해석의 가능성을 남긴다.
무엇보다 북경의 자금성이나 교토 어소 자신전의 기타비사시, 베트남의 후에 궁궐 등 동시대 동아시아 궁궐의 고찰을 통해 조선 궁궐의 특징을 규명하는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궁궐은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당대 건축 기술과 운영 이념이 집약된 매력적인 공간이다. 문화재청이 `문화가 펼쳐지는 궁궐, 역사가 숨 쉬는 궁궐`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한국관광공사 등과 함께 3년간 312억원을 투자해 선보이는 대규모 사업 또한 궁궐을 중심으로 역사를 읽으려는 맥락일 테다.
하지만 궁궐에 대한 무수한 자료 속에서 단지 궁궐 그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시선은 그 시대의 도시와 건축을 둘러싼 제 문제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