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다. 허리 굽은 노인들이 가재도구조차 팽개친 채 불산 가스를 피해 마을회관으로, 이웃마을로 피난을 가는 사진은 또다시 북괴가 쳐들어왔나 놀라게 만든다. 민방공 대피훈련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니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러나 안도도 잠시. 들판의 곡식은 말라 비틀어지고 수확을 기다리던 과일들은 불에 덴 듯 쏟아져 상품가치를 잃었고 가축도 침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한다.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보상대책을 마련했지만 원상회복과 정상적인 생활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복지 문제가 올 대선에서도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후보는 복지국가를 국가비전, 국정 철학으로 삼겠다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다. 그는 당선되면 즉시 복지국가 5개년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복지 대통령을 내건 셈이다.
다른 후보라고 복지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경제성장으로 복지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빈부격차를 당면 과제로 꼽으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발전시켜 경제적 약자를 돕겠다고 했다.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모토로 하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빈곤과 질병으로부터의 불안을 정부가 해소해주지 못하는데서 우리 사회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북방 경제를 통해 평화가 전제되는 복지국가를 이루겠다고 했다.
복지는 20세기 말부터 우리 사회의 화두로 굳어졌다. 해마다 복지 예산이 총예산의 27%를 넘어서는 것이다. 산을 뚫고 강을 건너 터널과 다리를 건설하는 토목사업보다 오히려 돌보는 이 없는 노인들을 규휼하고 우리 주위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복지야말로 국가가 해내야 할 사업임은 분명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재난과 사고로 재산과 생명을 잃는 억울함을 국가가 보호하고 막아줘야 한다.
정부는 2013년 복지 예산을 97조1천억원으로 책정했다. 올해 92조6천억원보다 4조5천억원이 늘어나 총지출 342조5천억원의 28.4%를 차지했다. 정부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 갈수록 심해지는 소득격차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내용도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빈곤층에 대한 보장성도 강화했다. 정부는 2050년이면 복지 예산이 전체 지출의 50%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초등학교 시절 내 동무 중 하나가 갑자기 집안이 기울어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랬다. 동무의 아버지가 큰 병에 걸렸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입원비와 수술비로 전재산인 집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아버지도 잃고 집도 잃어 가족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의료보험이 시작도 되기 전이라 그런 일은 흔하고 흔했다. 지금도 큰 병이 나면 병치레와 수발 등으로 가정이 풍비박산나기 일쑤인데 당시에야 오죽 했겠는가. 그래도 지금은 의료보험이 어느 정도 뒷받침해주고 사회보장제도가 기본적인 생존권은 지켜주어 장수시대를 여는 데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라면 복지를 내세우기 전에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선진 국에서도 총기 사고나 이유없는 살인 등 생명을 희롱하는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빈도나 사후 처리에서 우리와 판이한 모습을 보인다. 억울한 죽음이 생겨서도 안 되고 이유없이 피해를 당해서도 안 된다. 그런 위험으로부터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것이 국가의 제일차적 의무다. 복지라는 포괄적 개념보다 우선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국가 건설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은 국가가 막아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