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생각나는 과일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그중 대추를 좋아한다. 대추는 평상시 마른 것들을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고, 이를 떡이며 탕약에 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푸르름이 곧바로 가신 붉은 햇대추는 추석 즈음해서 나올 뿐인데, 그 달콤함에 어릴 때부터 좋아 했었다. 어릴 때 앞마당 구석에 오래된 대추나무가 있어 초여름에 열매를 맺고, 초가을쯤이면 붉어져 하나하나 따먹다보면 추석이 되었다.
어릴 때 산에서 뛰어놀다 아주 조그만 산대추를 따 먹던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대추나무는 집뜰이나 근처 밭이랑에 심어졌었고, 열매도 훨씬 컸었다. 내 어릴때 팔다리 곪은 곳이 있으면, 어머니가 대추나무 가시를 하나 떼 오라고 하여 곪은 곳에 구멍을 내고 꽉 짜주시던 기억이 있기도 할 만큼, 대추나무는 줄기가 매우 단단해 죽은 나무를 톱질하기도 매우 어려웠었다.
대추는 약용으로 많이 쓰이는데, 비타민 C의 함량이 오렌지보다 높고 칼륨, 인, 칼슘, 망간, 철, 나트륨, 아연, 구리와 같은 무기성분이 많이 포함돼 있다. 또한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황산화성분의 함량이 딸기, 자두, 사과, 블루베리 보다 높다. 이 대추나무의 재배역사는 중국, 한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3천년이 넘는다고 한다.
한동안 미국에 살면서 바나나, 오렌지, 파파야, 파인애플 등 갖가지 열대과일에 익숙해져서 한동안 대추열매의 맛을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국식품점에 햇대추가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크기가 내 어릴 때 맛보던 대추의 3~4배는 됨직했다. 반가움에 1kg이나 구입했는데, 대추라기 보다는 작은 사과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미국식품점에서 대추야자를 구입했는데 말려 설탕에 저린 것 처럼 너무 달았고, 형태도 좀 달라 보였다. 이 대추야자는 야자나무에 열리는 것인데, 주로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사막 오아시스에서 자라며, 현재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재배하고 있다. 이 대추야자나무는 키가 20m까지나 자라며 수명은 100~150년이나 된다고 하는데, 한그루에서 매년 250kg이나 되는 대추가 생산된다고 한다. 과거 낙타 등에 타고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은 5개씩만 먹어도 한끼 열량이 채워진다는 이 대추야자를 20kg 정도만 지니면 수개월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 동네친구들을 따라 청하저수지 뒤편 전원주택으로 놀러 갔더니, 마당 빙 둘러가며 내 키 정도 높이의 어린 대추나무들이 10여 그루나 죽 둘러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수십개씩 붉고 푸른 열매를 맺고 있어 그 열매를 몇 개씩 따먹으며 좋아하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누구도 대추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며칠 전 서울 사는 여동생이 시장에서 샀다고 햇대추를 한 무더기 보내왔다. 오빠가 추석 때 좋아하는 것을 보고 이 시장 저 시장 둘러보다 구입한 것이란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조그마한 땅이라도 구입할 수 있다면 먼저 대추나무를 심고 싶다. 대추야자는 겨울 평균기온이 0도 이상이어야 자랄 수 있고, 제주도에서 20년전 심어보았으나 열매를 맺지 못했다니 힘들 것 같고, 우리 토종의 대추나무를 심어야 할 것이다. 물론 다른 과일과 채소들도 함께 심을 것이다. 이는 빈땅을 녹색으로 꾸며주는 것이기도 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를 돌보는 내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난 우리 동네에도 이러한 유실수들이 심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야산에 보이는 것은 소나무들 뿐이다. 아파트 뜨락에도 보이는 것은 소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도 대추나무, 감나무, 밤나무 등 유실수들을 함께 심어 놓으면 좋을 것 같다. 날짐승들도 먹이를 찾아 좀 더 찾아들 것이고, 열매 익고 단풍든 그 풍경 또한 멋질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