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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날들의 기적

등록일 2012-10-23 21:02 게재일 2012-10-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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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논설위원

온 산에 단풍이 들고, 길거리엔 가로수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이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가을편지`란 노래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마치 계절의 배경음악처럼 들려오는 이 노래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의 시에 가수 김민기가 멜로디를 붙여 만든 노래다. 80년대 가수 이동원이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노래를 불러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가을노래가 됐다. `가을 편지`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가슴이 찡하게 저려온다.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고, 따라 써보고, 감상하는 소소한 즐거움에 가을이 깊어간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데 매일처럼 특별한 일들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끼는 일들은 많다. 그런 새삼스런 감정들을 불현듯 깨닫고 나면 평범한 일상도 그리 지루한 줄 모르고 지난다.

“나른한 오후의 편안한 잠, 햇빛을 받으며 신나게 자전거 타는 일, 과수원에서 맞이하는 아침, 우편함에서 발견한 반가운 편지 한 통, 잘 익은 복숭아 맛보는 일, 일을 마무리하고 난 후에 느끼는 날아갈 듯한 기분, 시험이 끝나자마자 공부한 것을 몽땅 잊어버리는 것, 따뜻한 샤워를 하고 산뜻하게 잠자리에 드는 일, 문득 떠오르는 첫 사랑의 아련한 미소, 치아 교정기를 떼어내고 자신감 있게 활짝 웃어보는 일, 우산을 펴지않고 일부러 맞아보는 빗방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넉넉한 품, 인터넷이 주는 즐거움, 마지막 수업을 빼먹고 친구들과 놀러나가는 일, 캄캄해질때까지 운동장에서 공을 차보는 일, 잔잔한 호수위에 통통거리며 만들어지는 물수제비, 과거의 일을 생각하다 가만히 웃고 지나갈 수 있을 때…”

독일신문의 청소년 섹션 `지금`(jetzt)에서 독일 사람들이 저마다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끼는 이유로 꼽은 내용들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인생에서 의미를 두는 것이나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일들이 참으로 사소하고 일상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 다른 시각으로 우리 삶을 들여다보자. 일상을 새롭게 평가하는 법을 배운다면 평범한 일상속에 숨어있는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눈에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알고보면 보이지 않는 기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라. 당신은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고, 당신의 몸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장소에서 밤을 보냈다. 난방장치도 잘 돼있어 포근함을 느끼며, 욕조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궜을 것이다. 물의 온도를 충분히 뜨겁게도 할 수 있고, 적당히 차갑게도 맞출수 있다. 당신은 깨끗이 세탁된 셔츠를 옷장에서 꺼내 마음껏 골라 입을 수 있다. 이른 아침, 길모퉁이 가게에서 갓 나온 신문을 살 수 있고, 개와 함께 산책하는 당신의 이웃과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이처럼 평범한 날의 시작도 알고 보면 매우 환상적인 것이다. 평범한 일상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란 사실을 깨닫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이런 평범한 날들 덕분에 세상은 살만한 가치를 지니는 게 아닐까.

이런 평범한 일상속에서 열심히 사는 민초들을 겨냥해 열심히 목청높여 외치는 세 사람이 있다. 저마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에 반값 등록금, 그리고 기초노령연금도 확대한단다. 세금은 크게 올리지 않고 말이다. 그야말로 `오병이어`의 기적같은 약속들이다. 그 약속들을 지킬 수 있다면 세 후보 모두 대통령으로 뽑아주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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