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조건` 사이언스북스 펴냄, 552쪽 스튜어트 월턴 지음<br>행복 등 기본 감정 6가지에 질투 수치 당황 경멸 포함
우리의 삶은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지하철에 가방을 두고 내린 사실을 깨닫고 당황해 하고 갑자기 들려오는 크나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며 으슥한 골목길에서는 사람 형상을 닮은 것만 봐도 공포를 느낀다.
경쟁 상대의 승승장구에 질투가 밀려오다가도 연인이나 오랜 벗의 격려 한마디에 금세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위정자의 위선에 혐오감을 느끼며 부당한 처우를 받는 일에 함께 분노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상실에 슬퍼한다. 인간에게 감정 없는 삶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인간다움의 조건(사이언스북스)`은 감정을 생물학적 성질의 것인 동시에 문화적 성질을 지닌 것으로 바라봄으로써 인간의 문화사를 통해 감정의 문화사를 들여다보는 과감하고도 새로운 시도를 담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문화사가인 스튜어트 월턴은 다윈이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꼽은 6가지 감정에 더해 그 6가지와 충분히 구별되면서도 엄격한 뜻에서 감정으로 규정할 만한 4가지 감정, 즉 질투, 수치, 당황, 경멸을 덧붙인 10가지 감정을 가지고, 개별 감정이 처음 시작된 기원에서부터 국가나 언론, 광고 매체 등이 적극적으로 감정을 이용하고 조작하는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문학과 예술, 철학, 대중문화를 분석함으로써 감정이 어떻게 인간 사회를 바꾸었고, 또 인간 사회는 어떻게 감정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인간의 먼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아프리카 초원을 가로지르던 그때 대자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던 공포와 불안은 이제 정치권력이, 종교가, 언론이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대상이 됐다.
그러나 지속되는 두려움은 분노로 바뀔 수 있다. 사회적 억압이, 통제가, 불평등이 집단적 분노를 낳기도 한다. 썩은 고기나 배설물 따위의 심각한 감염 위험성이 있는 대상을 인간이 피해야 함을 가르쳐 줌으로써 인간의 진화 과정에 기여했던 혐오는 이제 물질적 영역이 아닌 예술적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어떻게 피하려는 욕구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일까?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전쟁의 위협 없이 살아가는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이 수많은 문학 작품과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해피엔딩을 끝없이 재생산하는 것일까?
이 책은 크게는 10개의 장, 작게는 30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10가지 감정을 다루되 하나하나의 감정을 세 가지 각도에서 접근한다.
공포를 예로 들면 먼저 공포라는 감정의 기본형을 다룬다.
인류의 조상이 남긴 무덤과 동굴에 그린 벽화를 통해서 공포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거시적으로, 문명사적으로 성찰한다.
공포는 무서운 자연 앞에서 느끼는 원초적 감정이기도 하지만 무서운 권력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둘째 장에서는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의 저작을 통해서 권력이 인간에게 어떻게 공포를 유발하려고 하는지를 성찰한다. 권력 집단이 공포라는 타동사로 인간이라는 목적어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 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공포라는 감정이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실존적으로 파헤친다.
약소국 프로이센을 유럽의 패권국으로 도약시킨 프리드리히 대제가 옷 갈아입기를 죽기보다 두려워한 까닭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 구타당하면서 겨우 지금의 자리로 올라선 자신이 다른 옷을 입으면 다시 낯설어 보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무서움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일화는 공포라는 감정이 개인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를 보여 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