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험한 책` 민음인 펴냄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 지음<br>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유대인 대학살 불러 와
역사상 가장 위험한 책은 무엇일까?
고대 로마의 문헌 `게르마니아`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책 중 한 권이 됐는지 밝혀내는 `가장위험한 책`(민음인)이 출간됐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의 고전학 교수인 저자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가 수세기 동안 세계 각지에서 출간된 `게르마니아`와 관련된 엄청난 문헌 자료를 찾아내고, 라틴어, 히브리어, 독일어 등 자신의 모든 언어 역량을 집약시켜 조국 독일 역사에 대해 연구한 결과물이다.
20세기 냉전 시대를 야기한 `공산당 선언`, 미국 남북 전쟁의 도화선이 된 `톰 아저씨의 오두막 집`, 이슬람교를 신성 모독했다는 이유로 저자, 출판사, 번역가, 신문사 등이 테러를 당해 5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악마의 시`에 이르기까지, 책 한 권의 텍스트가 그 고유한 의미를 넘어 현실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위험한` 책들은 많다.
그중 로마 시대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르날도 모밀리아노(Arnaldo Momigliano)가 역사상 가장 위험한 책 중에서 상위권으로 꼽은 책이다.
이 책이 분열된 독일 민족에 국수주의 운동, 인종차별주의, 독일 민족지상주의, 게르만 신화 등의 이데올로기적인 기반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20세기 최대의 재앙으로 꼽히는 유대인 600만명 대학살을 일으킨 히틀러와 친위대 총사령관 히믈러가 나치 핵심 개념을 구상할 때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게르마니아`는 라틴어로 된 지리적·민족학적 작품으로, 현존하는 고대 게르만족에 관한 유일한 저서이다.
서기 98년,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여행자들의 보고와 문학적 자료를 토대로 게르마니아 지역에 사는 이민족들의 기원·관습·사회상을 간결하게 기록했다. 처음에 그가 그려 낸 게르만족은 충성스럽고 신체적으로 강인하지만, 문화와 교양이 없는 원시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필사(筆寫)로 전해지던 이 책은 수세기 동안 자취를 감추었고, 15세기에 이르러 로마에서 양피지 필사본이 재발견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교황 비오 2세를 비롯한 이탈리아 성직자들은 독일에 대한 수탈을 강화하고 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게르마니아`의 게르만족 개념을 끌어들였으며, 독일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은 게르만족의 순혈성, 충성심, 강인함에 대한 설명을 새롭게 해석하며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원고 자체도 불가사의한 마력을 띠게 되어, 학자, 귀족, 심지어 교황까지 이 원고를 구하거나 훔치려고 가세했다.
그 뒤 500년간 `게르마니아`는 꾸준히 재해석되고 오독됐으며,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용되거나 조작되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써서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유럽 전역에 전파했고,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는 타키투스가 쓴 게르만족의 특성에 영감을 받아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란 연설문을 발표했다.
프랑스의 민족학자 고비노는 `게르마니아`를 근거로 `인종불평등론`을 썼고,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는 이를 읽고 고비노와 교류하며 게르만족 이론을 국수주의 운동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결국 `게르마니아`는 20세기 나치 독일에 이르러 독일 혈통의 순수성과 우수성을 증언하고 나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이민족과 결혼을 금했다는 `게르마니아`를 근거로 독일인과 유대인 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독일인 혈통 및 명예 수호법`이 제정됐고 `게르마니아` 속 경구는 청년들을 `게르만 전사`로 육성하고 다른 인종을 증오하도록 교육하는 각종 교재와 역사서에 인용됐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서전 `나의 투쟁`의 제목으로 `게르만 혁명`을 검토했고,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의 수도가 있는 미래의 게르만 국가를 구상했으며, `게르마니아`를 이용해 독일 민족지상주의, 인종주의 이론을 내세웠다.
`게르마니아`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홀로코스트의 주모자인 나치 친위대 총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는 순수한 독일을 부활시키겠다고 맹세하고 그 사본을 입수하기 위해 비밀공작을 벌였다. 1천800여 년 전 타키투스가 `게르마니아`를 썼을 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저자는 로마 시대부터 나치 독일까지의 권력자와 지식인들이 각자의 지식과 이해관계에 따라 `게르마니아`를 오독하거나 왜곡한 사례를 광범위하게 분석해 나가며 한 권의 책이 지닌 의미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왜곡되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마치 탐정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추적한다.
치밀하게 논지를 전개하면서도 요소요소에 건조한 유머를 배치해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대중적이고 지적인 역사물의 전범”을 만들어 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