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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집에서

등록일 2012-12-21 00:10 게재일 2012-12-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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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 건
처마 끝에 잡혀 온 산그늘

뒤뜰 대숲 지나온 바람 깃 잡고

가마 아궁이로 숨는다

옹기막골 아궁이 붉은 혓바닥

뒷걸음으로 다가온 뉘우침처럼

빗장뼈 사이를 날름대며 드나들고

도공은 제 맘 하나로 기와를 구울까

속 내 감춘 불이 구울까

토판에서 일그러진 흙가래들이

제각기 문양을 두르고 몸을 차린다

보이지 않는 것들, 잃어버린 것들

눈 감고 모여 앉아 뜨거워 오는

저 하늘대는 혓바닥에 젖는다

동틀 녘 수막새 울음소리에

졸던 대숲바람 새털처럼 일어선다

도공이 정성껏 빚은 옹기를 가마에 넣고 불질을 하는 풍경이 선명하다. 천 도가 넘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연단되어 나온 옹기는 더 이상 토판에서 일그러진 흙가래들이 아니다. 제각기 문양을 두르고 몸을 차린, 도공의 영과 혼이 표출된 새로운 한 세상을 열어젖히며 태어나는 것이다. 그 엄숙하고 경이로운 순간 졸던 대숲바람도 새털처럼 일어선다고 표현한 시인의 시안이 참 밝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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