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아시아…` 아시아 펴냄, 360쪽<br>올 마지막 `인도 델리` 소개 28개주 구성·24개어 사용
계간 문예지 `아시아` 겨울호인 `스토리텔링 아시아 시리즈`(아시아)는 우리가 잘 아는 도시지만 잘 알지 못하는 도시의 이야기를 `이야기 지도`로 펼쳐 보인다.
2012년 `스토리텔링 아시아`는 하노이, 상하이, 삿포로를 먼저 여행했고 올해 마지막으로 인도 델리를 찾아간다.
28개 주, 7개 연방직할령이 있고, 24개의 공용어를 사용하는 인도는 하나의 문화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델리는 여러 가지 문화와 언어가 한데 어우러지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이다. 쿠시완트 싱이 소설 `델리`에서 말한 것처럼 이번 델리편을 읽다보면 델리가 가진 묘한 매력에 취할지 모른다.
십 수 년 인도를 드나들며 다양한 층위의 여행을 하며 진짜 여행은 인도에만 있다고 여긴 여행가이자 사진가인 이희인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어 한다. 바로 진짜 소설들은 인도에만 있다고. 인도 소설은 세계 어느 나라의 소설보다 약동하는 생명력을 자랑한다고 한다. 2008년 `화이트 타이거`로 부커상을 수상한 아라빈드 아디가 `적절한 균형` `그토록 먼 여행`의 로힌턴 미스트리,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비카스 스와루프, `축복받은 집`의 줌파 라히리, `작은 것들의 신`의 아룬다티 로이, `아편의 바다`의 아미타브 고시 그리고 `델리`, 인도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쿠시완트 싱의 작품 등이 있다. 이번 스토리텔링 아시아 델리편에서도 M. 무쿤단과 폴 자카리야의 단편소설을 통해 인도 소설의 풍미를 맛볼 수 있다.
`라마야나`는 고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재미있다. 신과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진 판타지같은 배경에 왕자 `라마`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자격, `도덕`에 관한 물음을 다시 속 깊은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에 영화평론가 이안이 다시 물음을 던진다. 바로 여성의 눈으로 `라마야나`를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영화인 이안의 글 `영화 속의 라마야나`는 디파 메타 감독의 `파이어`와 니나 페일리 감독의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를 고찰한 글이다.
영화 `파이어`가 고국 인도의 여성을 여전히 얽매는 관습 때문에 여성들이 어떻게 고통 받고 저항하는가를 짚어보는 영화라면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는 그 관습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됐으며, 그런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인도 바깥 여성에게 어떤 공감과 위안을 주는가를 살피는 애니메이션이다.
`Dilli dur ast`(델리는 멀다)라는 말처럼 델리는 인도의 민중들에게도 또 여행자들에게도 천상만큼 먼 도시이다. 그래서 델리편 이야기 지도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서장을 연다. 이희인 작가의 `인도를 여행하는 독서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는 인도에 매혹된 여행자의 인도 현대 소설에 대한 단상들을 담고 있다.
`이야기 지도 4`는 인도가 가진 고민에 대한 이야기다. 말라얄람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 M. 무쿤단의 단편소설 `운전사`는 평생 남의 운전사로 일하다 존재론적 각성에 이르러 시인이 되고자 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폴 자카리야의 `라다. 오직 라다`는 앞서 말한 무쿤단에 대한 소설적 오마주를 숨기지 않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마카란드 파란자페의 논문 `인도 영어, 인도 토착어`는 공용어만도 열네 개에 이르며 보조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다언어 사회인 인도에서 문학 텍스트의 생산과 번역 문제를 탐구한 글이다.
닐락시 보르고하인의 단편 `현지인`은 소수 언어인 아삼어 사용자인 작가의 곤경을 자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언어 문제에 대한 비평과 소설이 서로 잘 조응하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국내 발표된 소설 중에서 우수한 단편을 골라 소개하고 있다. 이번호에 소개할 단편은 박형서 작가의 `아르판`이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의 소수 언어 사용자를 인물로 끌어들여 글쓰기에 대한 고뇌를 야심차게 밀어 붙인 단편이다. 아울러 이영광 시인의 두 편의 시는 겨울의 길목에서 짙은 서정을 입혀주고 있다. 그리고 현재 델리에 체류 중인 고명철 평론가가 보내온 산문은 인도의 정치·사회적 갈등을 조망한 글로 현장 보고서로서 손색이 없다. 김정남 평론가가 쓴 로힌턴 미스트리 장편소설 `그토록 먼 여행` 리뷰도 일독을 권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