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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청년이 느낀 9·11테러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01-04 00:18 게재일 2013-01-0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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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번역   민음사 펴냄, 176쪽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민음사)는 파키스탄 청년이 느낀 9·11테러를 소재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저명한 학자, 작가, 기자들의 엄청난 찬사를 받았으며 전 세계에서 100만 권이 넘게 팔린 데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가디언` 선정 `지난 10년간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다.

또한 다양한 상의 후보(부커 상, 제임스테이트 블랙 문학상, 연방 작가상)에 올랐으며 애니스필드울프 문학상, 아시아아메리칸 문학상, 앰배서더 문학상, 사우스뱅크 쇼 문학상, 이탈리아 문학상 등 여러 상을 휩쓸며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저자 모신 하미드는 찬게즈라는 한 파키스탄 청년이 익명의 미국인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형식을 통해, 그 상대 미국인을, 독자들을 `청중`으로 만든다.

하미드는 세계의 독자들을 향해 9·11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이야기는 실컷 들어 왔으니, 이제는 제3세계의 입으로 그 이야기를 들어 볼 때가 됐다고, 서구의 목소리가 늘 제3세계의 목소리를 압도해 왔지만, 설혹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그들과는 다른 시각과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목소리로 말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의 특별한 점은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었을 민감한 정치 주제를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명료하고 날카롭게, 하지만 결코 그 목소리가 과격해지거나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담담하고 나직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거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찬게즈의 사랑 이야기다.

모신 하미드는 정치적 주제와 사랑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자연스럽게 녹여 냈다. 프린스턴에 진학해 이제 막 새로운 삶에 대한 꿈에 부푼 찬게즈에게 있어 미국 여성 에리카는 그 꿈을 상징하는 존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찬게즈와 에리카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에리카에게는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고, 그 첫사랑은 에리카를 고립 속으로 몰고 간다.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연인에게 9·11은 위기로 다가온다. 위태롭고도 은밀한 사랑 이야기는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아찔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러브 스토리에 더해 이 소설은 또 하나 `스릴러`의 외피를 입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라호르의 옛 시가지, 한 파키스탄 청년과 미국인 남자가 식당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이 미국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웨이터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태도, 안주머니 속에서 불룩 솟은, 마치 권총과도 흡사한 실루엣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키피”한 박쥐 무리까지, 어딘지 음울하고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작품 전반을 휘감는데….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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