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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3-01-15 00:25 게재일 2013-01-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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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광
아버지 속 아프고 어지러운데 소주 마셨다. 마셔도 아프다 하면서 마셨다. 한 해에 한 사흘, 마셔도 많이 아프면 소주병 문밖에 찔끔 내놓았다. 아버지 쏟고 싶은 건 다 쏟고 살았다. 망치고 싶은 것 다 망치고 살았다. 그러다 하루 소주 한 댓병으로 천천히, 자살했다. 조용한 아버지가 좋다 죽은 아버지가 좋다 아. 그러나 텅 빈 지구에 돌아온 달처럼 덩그러니 앉았노라니, 살았던 아버지가 좋다. 시끄럽게 부서지던 집이 좋다. 아버지 평생 농사 헛지었다. 나는 어두워져 허공을 갈고 다녔다. 달 하나로 살았다. 문득문득 겨울 들판처럼 글자를 다 잊어버린 어머니가 있다. 공구 같은 손이 또 시집 그 거칠고 어지러운 것을, 고와라고와라 쓰다듬는다. 점자를 읽듯,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호두나무 가지에 찔려 오도 가도 못 하는 , 똥그런 보름달 헛배.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 생을 보름달에 투영하면서 시인은 평생 술을 좋아하시며 농사지으시다 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달 아래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멋지게 한 생을 사셨던 아버지. 비록 못배우고 가진 것 별로 없지만 달처럼 욕심없이 유유자적하게 살다가신 아버지. 이 땅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 아버지가 그리운 아침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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