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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르침

등록일 2013-02-14 00:19 게재일 2013-02-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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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신정을 멀리하고 음력설을 지키는 나다. 그래서인지 설이 되면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때이기 때문이다. 설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느낌이 난다. 어렸을 때 공주 봉황동 산동네에서 갖가지 명절놀이를 즐기던 기쁨은 사라졌다. 하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 인생의 곡절이 많아질수록 설은 가슴에 와 닿는 세시풍습이 된다.

집에 가면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다. 옛날에는 집에 가도 부모님 아랑곳하지 않고 고등학교 동창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놀았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가면 친구들과 점심이나 하고, 차나 한 잔 하고 들어와 일을 돕거나 부모님 옆에 앉아 있게 된다. 올해는 아버지가 좀처럼 입에 올리시지 않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 인생 중엔 내가 모르는 `비밀`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수학과정이었다. 어떻게 공부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늘 불분명했다. 소학교에 들어가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인천공고에 들어갔고, 거기서 공부도 하고 럭비도 해서 서울사대 체육과에 들어가신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국민학교 졸업 후에 어떻게 고등학교까지 갔나? 아버지는 이 대목을 늘 인천으로 가출하다시피 해서 공부를 했노라 하셨다. 충남 서산에서 인천은 뱃길로 왕래하는 곳이어서 그곳으로 갔다는 말씀이었는데 그 과정이 늘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었던 것인데, 이번에 그것을 알게 된 것이다.

거실 한 쪽에는 아버지가 써놓으신, 일본어 시구 같은 것에 한글 번역까지 함께 해 놓은 A4 용지 몇 장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여쭈어 보니, 누군가 일본 여행 갔다 온 분이 레코드를 한 장 선물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듣고 그 뜻을 알고 싶어 하셔서 번역을 해주신 것이라 한다. 아버지는 옛날에 국민학교 마치고 진학할 수 없게 되자 물지게를 지고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혼자 일본어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집 한쪽 벽에는 어머니가 옛 분답게 펜으로 세로쓰기로 써놓으신 문장이 있다. 어머니는 이렇게 쓰셨다. `福은 검소함에서 生기며 /德은 겸양에서 생기며 /道는 安定에서 생기며 /命은 화창에서 생기느니라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罪는 참지 못하는 데서 생기느니라.``법요집`에 들어 있는 문장이다.

어머니가 종이로 써서 붙여놓으신 이 문장은 벌써 이십 년쯤 그곳에 그대로 붙어 있었을 것이다. 종이가 누렇게 변색이 되고, 네 모서리가 모두 들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그것을 처음 보는 듯 새로운 눈으로 글귀 하나 하나를 내게 비춰 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나는 검소하지 않았다. 학창시절부터 없이 사는 것이 습관이 돼, 있으면 쓰는 생활을 이어왔다. 나는 겸양에서 들쑥날쑥했다. 어떤 때는 나 자신을 한 없이 낮게 생각하고, 어떤 때는 내가 잘난 곳이 있으려니 했다. 내 삶은 결코 안정되지 못했다. 어느 노사가 지어주신 내 호는 운형(雲兄), 그것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내 습성을 정확히 갈파한 이름이었다. 성품에서 화창하지도 못했다. 내 타고난 명랑함은 반대편의 우울에 침습을 받는다. 조울증의 기운이 없지 않다. 나는 물욕과 경망함과 참지 못함을 가진, 사람의 아들, 남의 성스러움을 부러워하지만 내 자신은 결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오래 전에 붙어 있던 글귀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추해 보려 애썼다. 생활이 심안을 흐리게 만들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알 수 없게 했음을 비로소 또렷이 알 수 있었다.

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래서 설이 좋다. 돌이켜 보면 뜻 모르고 놀던 옛날 옛적 일들이 아스라이 멀다. 옛날 가르침이 이렇게 비 온 후 앞산처럼 선득 다가오다니. 이제 다음에 올 설은 또 얼마나 새로울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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