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포항 도심에서 일어난 산불로 시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는 가운데 성난 화기(火氣)를 다스리듯 촉촉한 봄비가 내렸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비가 와서 다행이다. 황량하기만 한 시민들의 마음에 그나마 봄비가 위안을 주는 것 같아 출근길이 한결 가볍다. 화마(火摩)에 휩싸인 도심이 전쟁터를 방불케 한 이번 산불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20년 전에 난 대형 산불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며 포항 도시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이번 도심 산불은 그 위력이 대단했다.
용흥동에서 발화된 산불이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주택가를 뛰어넘어 우미골 뒷산을 태우고, 산자락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우미골 마을을 휩쓸고, 다시 덕수공원의 수도산을 덮친 뒤 필자가 살고 있는 우현동 고층아파트촌을 위협하며 산 밑 절간과 고층아파트 몇 가구를 태웠다. 포항여고, 포항중학교, 항도초등학교 등 학교가 밀집해 있는 학산동 뒷산을 불바다로 만들고, 포항고등학교 담장을 태우며 앞뒤에 있던 산들을 마지막 제물로 삼고는 일단락 지었다. 삽시간에 번진 산불은 멀게는 1km이상 미친듯이 날아다니며 곳곳을 벌집 쑤셔놓은듯 도심지를 유린했다. 강풍을 동반한 미친 화마는 산불진화를 통제하는 행정당국과 소방당국을 우왕좌왕하게 만들었고, 일사불란한 재난관리가 이뤄지지 못해 시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 산불이 많은 교훈을 남긴 것에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깊이 인식해야 할 대목이 있다. 사소한 부주의와 남을 생각지 않는 지나친 이기주의, 그리고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오는지 생각하게 한다.
산과 늘 함께하는 산악인의 한 사람으로 1천500만명이 넘는 등산인구가 있는 우리나라의 산행문화가 아직도 선진화되지 못하고,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고 있어 불안한 마음으로 안전산행 선도를 하지만 무엇보다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인들의 의식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어린 중학생들의 철없는 불장난이 엄청난 재앙으로 번진 이번 사태에서 보듯 우리사회에서의 시민의식이 어릴적부터 철저히 선진화되지 못한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선진국 일수록 기초질서와 안전의식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교육돼 몸에 밴 습관으로 생활화하고 있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
다만 이번 화재에서는 예전과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불꽃이 날아들어 사방의 산들이 불바다가 되고 아파트단지로 불씨가 날아와 주변을 태우고 있을 때 뛰쳐나온 주민들이 하나 되어 주변의 불씨를 잡고자 아파트의 소방호스를 끌어내 산 아래로 내려오는 불길을 잡기도 하고, 물통으로 물을 퍼나르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이웃의 불행을 막아보려고 애쓰는 선진시민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돋보였다. 소방당국의 늑장 대응에 분통을 터트리면서 우리 동네는 우리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뜨거운 불길도 아랑곳 하지 않고 동분서주하는 모습들이 메마른 사회에 단비 같은 일류시민들의 참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화재진압에 나선 모양이 우리지역을 하나로 뭉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옥에 티로, 앞다투어 진화에 나서는 동네 이웃을 뒤로하고 나만 피하고 볼 양으로 짐싸 나가는 일부 주민들과 연신 불타는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찍어대는 얼빠진 몇몇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번 도심 대형 산불에 대처하는 시민들의 성숙된 시민의식이 보기가 좋았다.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 집과 재산을 잿더미로 잃은 슬픔을 시민모두가 함께하며 빠른 회복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고있는 훌륭한 지역민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이웃과 산불진화와 복구에 여념 없는 공무원, 군인, 자원봉사원들에게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