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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침대서 내려오지 않은 남자 이야기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04-05 00:05 게재일 2013-04-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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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민음사 펴냄<br>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대신 천천히 죽어 가는 것 선택<br>먹이고 씻겨 준 엄마 사랑 그를 죽게했나, 살게 했나

“독특하고 기괴한 설정에 있어서 카프카를 능가한다는 평을 받았는데 소설을 읽다 보면 카프카의 `변신`이 자꾸만 떠오른다.”

`침대`를 번역한 정회성은 `옮긴이의 말`에서 이런 감회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맬컴은 20년이 넘도록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어른이 되는 것이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평범해지는 것임을 깨달은 그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 다음 날 침대로 올라가고, 7484일 후 기중기가 침대와 한 몸이 된 그를 들어 올려 집 밖으로 옮길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대신 천천히 `죽어 가는` 것을 선택한 맬컴과, 그런 그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

`침대`는 성장을 거부한 남자 곁에서 성장해 가는 가족들을 그리고 있는 독특한 성장소설이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택한 형 때문에 이름 대신 `맬컴의 동생`으로만 불리는 `나`의 이름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작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는 “나는 일부러 그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갖는 걸 원치 않았어요. 그는 평생 맬컴의 그림자로 살아왔기 때문이죠”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나`는 부모와 사랑하는 여인의 관심을 형에게 빼앗긴 채, 그러나 끊임없이 그들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살아간다. 평범함을 거부한 형 때문에 이름조차 잃었지만, 동시에 형 때문에 삶과 사랑을 고민하면서 특별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힘차게 박동하는 심장을 나눠 주고서 갑자기 그것을 벽에 던져 무참히 터뜨려 버린다면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학교에서 배운 모든 내용이 결국 현실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면? 이런 게 진짜 삶이라면, 굳이 침대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본문 중에서)

맬컴과 나의 부모, 그리고 두 형제의 연인인 루 역시 맬컴이 던져 준 인생의 숙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고 방황한다. 자신이 만든 탄광의 엘리베이터 사고로 십여 명의 광부가 목숨을 잃은 후 평생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아빠,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돌보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엄마, 가족을 떠나 버린 엄마 때문에 폐인이 된 아빠에게 돌아가기 위해 연인을 떠나야 했던 루.

이 세 사람 역시 맬컴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되지만, 역시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찾게 된다.

언젠가 아버지가 했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라는 말을 나는 늘 곱씹는다. 그러나 반대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음을 `침대`는 그려 낸다.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맬컴을 먹여 주고 씻겨 주고 다독여 주는 엄마는 그를 살게 하는 것일까 죽게 하는 것일까.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형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그녀의 사랑이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맬컴은 마지막 날인 7천484일째에 “나는 엄마에게 누군가를 이십 년 동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렸어. 내가 엄마를 살아 있게 한 거야”라고 말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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