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립연극단 `세자매` 14일까지 중앙아트홀서 공연… 블랙코미디 표방
지방에서 처음으로 포항을 찾은 `문화게릴라` 이윤택 연출가의 `세 자매`는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 문호 안톤 체호프의 동명원작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다.
`세 자매`는 `특별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우리의 삶이 가진 아이러니를 통해 갈등을 엮어내고 이야기를 자아낸 체호프 식 희곡이 소개된다.
예술 장르에서 절망과 허무는 흔하고 흔한 소재 일 따름이지만 체호프의 `세 자매`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통스러운 지적 성찰을 근사하게 이뤄냈다.
절망 속에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세자매`는 가벼운 연극이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여운을 2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빼곡하게 담아낸다. 세 자매-올가, 마새, 이리나-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방황, 좌절 등이 관조적으로 그려져 가슴을 적신다. 세상살이가 힘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자는 연출자의 의도가 고스란히 전해져 연극 치고는 제법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세 자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향을 떠나온 세 자매와 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사랑과 사람에 대한 희망·좌절·슬픔을 비극과 희극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그린다.
기존의 텍스트가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을 그렸다면 이윤택은 현실에 지칠대로 지친 세 자매의 육체적이고도 정신적인 사랑에 대한 동경을 그린다.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작품속 각각의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을 찾아내고 거기에 연민과 무시, 공감과 무관심, 사랑과 회피를 섞어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성격을 창조해 냈다.
지난 3일부터 14일까지 포항시립중앙아트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세 자매`는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반사실주의적 극작 연출가로 이름난 이윤택이 늘 추구했었던 일상성의 희극으로서 충실히 연출됐다.
이윤택의 무대는 자작나무가 심어진 회전무대를 설치해 장면 마다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는 무대장치가 돋보인다. 끝없이 비우고 채우는 연출력이 무대를 압도한다. 그간 `세 자매`는 비극적으로 그려졌지만 이윤택이 연출한 `세 자매`는 블랙코미디를 표방한다. 너무 슬프고 지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희극적이고 자신의 말만 앞세우며 동문서답하는 상황이 희극적이라고 말하는 이윤택은 반사실주의 작가이며 연출가다. 이러한 배경에는 원작을 해체하고 비틀어서 재구성하는 해체주의적 배경이 자리한다. 모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걸출한 연출가의 `세 자매`가 포항 연극을 달구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윤택 연기 메소드가 포항시립연극단원들에겐 아직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느낌이다. 대사 전달에 답답함이나 모호한 극의 흐름이 자칫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에게 열등감을 주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진심이 담긴 이야기는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세자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가슴으로 체득한 삶에 대한 진한 연민이다.
체호프가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심오함을 가진 작가”라고 묘사되듯 군인 유족의 가정을 통해 현실은 절망스럽지만 희망을 품고 꿋꿋하게 살아가다 보면 훗날에는 그 일들이 아름다운 삶의 여정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라는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전달하는 `세자매`는 지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연극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연극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